미국에 20년 넘게 살다보니 한국을 방문하면 사람들로부터 "고생 많지?"라는 위로 섞인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고생이 많겠다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미국 사회에는 인종차별이 심할 텐데 그런대로 견딜만한가"라는 궁금증도 내포되어 있는 듯 싶다.미국에 사는 한국인이 당하는 인종 차별은 어느 정도인가? 과연 미주 한인들은 차별을 매일 피부로 느끼며 사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치 않다. 만약 내가 오늘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부터 불친절한 대접을 받았다면 그것은 그녀가 나를 동양 사람이라고 만만히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늘따라 그녀에게 어떤 속상한 일이 있었기 때문일까.
한인을 비롯한 이민자들에게 가장 적대적인 태도(겉으로 보기에)를 보이는 이들은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백인 블루칼러 계층이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이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인근 공장에 취직하면 안락한 중산층의 삶을 누릴 수 있었기에 이민자들과 부딪힐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주요 제조업체들이 해외로 이주해버린 오늘날 이들은 서비스 산업의 값싼 일자리를 놓고 이민자 그룹과 부딪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비해 교육수준이 높은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관대하고 친절하다. 그러나 이들의 친절이 '사회적 약자'가 아닌, 자신들과 대등한 경쟁자로 올라선 이민자들에게까지 한결같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일 뿐, 개인의 인품이나 경험, 처한 입장 등에 따라 이민자에 대한 태도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미국사회에는 적어도 모든 사람을 인종이나 국적, 종교, 성별, 연령, 성적 취향에 따라 차별하면 안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고, 이 합의를 어기는 행위에 대해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기회가 비교적 공평하게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인종차별도 있고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사회악도 존재한다. 하지만 겉으로는 요지경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도 그 저변에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해 나가기 위한 감시와 견제의 틀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살아갈수록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감시와 견제의 틀은 거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앞서간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피땀으로 이룩된 것임도 깨닫게 된다. 남의 나라에서 사느라 '고생'도 심하지만 그 고생을 상쇄시킬만한 미덕도 갖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란 생각을 해본다.
한수민 미국/국제로타리 세계본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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