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형님. 형님 곁을 떠나온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랜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뵙지 못한 세월 속에 이제는 영영 만날 수 없는 곳으로 형님은 떠났습니다.제가 서울에서 9년 전에 형님을 뵌 것이 이 땅에서 마지막이었습니다. 얼마 전 혈압과 당뇨로 병원을 다니신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렇게 빨리 떠나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민 와서 살아가는 것이 어렵고 힘들지만, 더욱 마음 아픈 것은 형님이 떠나시던 날 형님 곁으로 달려가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형님은 떠나시고 그리운 지난날의 추억만 나의 마음에 남았습니다. 형님이 대대장으로 군에 계시던 시절 우리 4형제 모두가 현역으로 함께 군 생활했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주말이면 한자리에 모여 부산 자갈치시장 생선횟집에 자주 갔었지요. 둘째 형이 중령으로 진급했을 때 형님의 기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셋째 형이 병기학교 고금반 교관으로 집에서 출퇴근할 때 형님의 모자를 바꿔 쓰고 나가다가 되돌아 온 것 기억나시죠.
제가 근무하는 육군통신기지창에 육군본부 감찰검열이 나왔던 날이 생각납니다.
모두들 긴장하며 도착하는 지프차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맨 뒤 검열단장 차에서 형님이 내리시는 것을 보고 정말 반가웠습니다. 검열단장 앞에서 겁 없이 검열 받는 내가 이상했는지 우리부대 부관이 내 얼굴 한번 쳐다보고 형님 얼굴 쳐다본 것을 아셨는지요.
오래 전 제가 미국으로 이민 간다고 형님께 말씀드렸을 때 열심히 살아서 집도 장만하고 자리를 잡았는데 다시 고생하러 간다고 말리셨죠. 23년이 지난 지금도 형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형님이 제일 사랑했던 우리집 장남이자 막내인 종민이도 버클리대를 마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앨러미다에서 교편생활을 하고있습니다. 가끔씩 형님 이야기를 한답니다. 오랫동안 뵙지 못한 그리움과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없는 형님인 것을 알고 있지만 때론 달려가면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리움이 마음 가득합니다.
형님, 고국에 가는 날이 오면 제일 먼저 형님이 편히 잠드신 대전 국립묘지로 달려가렵니다. 많은 세월동안 찾아 뵙지 못한 막내 동생을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형님께 못다한 말, 형님 사랑합니다.
/김광준·미국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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