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에서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의 대사관에 발령 받는 것은 선망의 대상이다. '미국통''일본통''중국통'등 자신의 전공을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고 외교부 내에서 이미 잘 나가고 있는 선배들과 끈끈한 인연을 맺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주요국 대사관에 외교부내 엘리트들이 모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엘리트 주의에는 그만큼 어두운 그늘이 있다.외교부 인사 때마다 워싱턴 주미 대사관 빈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이곳을 거치지 않고 '부내(部內) 출세'를 할 수 없다는 불문율이 외교관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에 온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북미 관계와 한미 동맹 관계 등 정무 업무를 맡는 자리가 노른 자위에 해당한다. 대미(對美) 편식증에 걸린 한국 외교의 특성상 미 국무부나 국방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접촉하는 주미 대사관 정무직은 그만큼 각광을 받는다. 특히 정무 참사관은 '대미 외교의 꽃'으로 불린다.
영사 업무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뒷전이다. 영사 업무는 대개 워싱턴에 발령받은 초임이 맡는다. 영사과에서 1년∼1년 반을 근무하다 정무과나 의회과로 옮겨가는 게 관례이고 때문에 영사 업무는 '때워야 할 '통과 의례 정도로 여겨진다. 영사 업무의 전문성을 기대하기는 애당초 무리이다.
주요국 대사관에는 국내로부터 불어오는 '정치 바람'이 거세다. 지난해 6월 당초 실무방문으로 추진되던 방일이 국빈방문으로 격상되자 청와대, 한일의원연맹,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은 서로 "내가 했다"고 공을 내세웠다.일본 대사관에는 또 누구 누구가 대선에서 유력 후보에 선을 대 은밀히 지원한 공으로 발탁됐다는 얘기들이 전해 내려온다. 자신이 밀던 후보가 낙선하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옷을 벗고 일본의 대학이나 연구소에 몸을 의탁하기도 한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외교관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역으로 노 대통령의 눈에 드는 것은 '초고속 출세'를 보장 받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풍토를 두고 한 관계자는 "정보가 여기저기로 줄줄 샐 수밖에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일본에서도 영사업무가 권위주의적이라는 불만이 많다. 한 관계자는 "주목 못 받는 영사업무에서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외교관들이 홀대 받는 분위기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의 경우 탈북자 문제, 조선족문제, 고구려사 문제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최근 들어 불거진 탈북자 7명의 북한추방, 국군포로 전용일씨 사건, 마약사범 신모씨 사형 등으로 대중 외교는 많은 교민과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중국뿐만 아니라 재외공관 외교관들의 큰 고충 중 하나는 너무나 많은 국내 인사들의 사적 방문이다. 국회의원, 정부고위관리, 당 인사 등이 사적인 여행을 와서도 대사관 도움을 요청하는 탓에 외교관들은 "내가 여행사직원인지 외교관인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베이징= 송대수특파원 dssong@hk.co.kr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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