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에서 제대로 눈도 감지 못할 자식의 원혼이라도 달래 주는 길은 이 길 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길거리 서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지난해 태풍 매미를 동반한 해일이 순식간에 마산항 매립지를 뒤덮는 바람에 매립지 상가건물 지하에 있던 금쪽 같은 아들과 예비 며느리를 함께 잃어버린 정계환(66·경남대 외래교수·마산시 월영동)씨. 그는 지난 29일 마산항 매립지에서 열린 전국 민방위 해일시범훈련장 한켠에서 '추모 해운프라자 유족회'라는 검은띠를 매고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달래기 위한 눈물의 서명작업을 벌여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작년에 일어난 사고의 수습 조차 아직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무슨 해일예방 훈련입니까?"
정씨는 수몰된 아들 시현(27)씨와 약혼녀 서영은(23)씨 등 8명이 지하상가에 있다가 인근 마산서항 부두에 쌓아둔 원목더미가 출입구를 막아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해 변을 당한 이후 유족대표를 맡아 사고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및 사고지점의 위령탑 건립 등을 위해 거리로 나섰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결혼식장이든 장례식장이든 가리지 않고 달려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서명을 받았습니다." 정씨는 8명의 유족을 대표해 지난 3월말까지 1만5,000여명의 서명을 받아 창원지검에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어 청와대와 감사원 등에도 탄원서를 보내기 위해 서명작업을 계속해 최근까지 받은 서명자가 2만여명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정씨 등 유족대표들은 마산시장과 건물 소유주, 원목 수송·하역업체 대표 등 1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및 직무유기 혐의로 창원지검에 고소했지만 진전이 없는 상태다.
유족회가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개설한 '여덟 천사들'이라는 추모 카페에서 이들 예비부부의 영혼결혼식을 올린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의 추모행렬 이어지는 등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정씨는 "행사장 앞 바다에 뛰어들어 죽으려는 마음도 먹었지만 주변에서 말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앞으로 많이 살아야 10년인데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원혼이라도 달래주어야 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족들이 받은 보상은 1인당 정부 위로금 500만원과 특별재해지역 선포 후 1,000만원 등 1,500만원이 전부이며, 유족들의 주장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정씨의 아내(62)는 지금도 저녁이 되면 "애들 올 시간 됐는데 왜 문을 잠그나"라고 넋두리할 정도로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정씨 자신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마산=이동렬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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