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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꽃잎처럼 진 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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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꽃잎처럼 진 젊음

입력
2004.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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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무장단체에 의해 희생된 한 젊은이의 죽음은 우리 모두를 비탄에 잠기게 했고 2년 전 서해교전에서 산화한 6명의 젊은이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새삼 가슴이 저려온다. 이들의 죽음에 대해 숙연해지는 것은 장삼이사처럼 병석에서의 예사로운 죽음이나 사고사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꽃잎처럼 스러져 갔다는 느낌 때문이다. 꽃 피우지 못한 젊음과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에 대해 애틋한 감회가 없을 수 없다.혹시 김선일씨의 죽음이 서해교전에서 목숨을 바친 용사들의 죽음과 품격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김씨에게서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스와 싸우다 전사한 헥토르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용기를 기대했다면 그런 영웅적 용기는 부족했을지 모른다. 허나 그의 죽음이 수 개 월 동안 노심초사 끝에 한국이라는 국가공동체가 파병이라는 결단을 내린 결과에서 비롯된 것일진대 분명 국가를 위한 의미 있는 희생이 아닐 수 없다.

희생은 영어로 'sacrifice'라고 하는데 라틴어 'sacrum+facere'에서 유래한 바 "성스럽게 만들다" "신성하게 하다"는 뜻이 배어 있다. 동양에서도 희생은 복을 빌고 재앙을 없애기 위하여 천신(天神)에게 소·돼지를 바치거나 혹은 심청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을 바치는 유습을 가리켰다. 결국 절대적 존재에게 고귀한 생명 그 자체를 제물로 바침으로써 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희생자 또한 신에게 귀의하는 것이 희생이었다면, 우리 젊은이들의 경우 그 대상이 신에서 국가공동체로 바뀐 것에 불과할 뿐 정신은 같다.

모름지기 이 젊은이들이 '자기실현'을 이룬 존재는 아니다. 그들에게 깜짝놀랄 만한 성공을 일구어 낸 '백만장자의 스토리'나 빈털터리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로 10억 만들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려는 야심찬 꿈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나름대로 꿈은 있었다. 선교사나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 그 밖에 소박하면서도 소중한 또 다른 꿈이 있었던 것이다. 그 꿈은 예상치 못한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죽음은 헛된 것일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자기실현'을 넘어 '자기초월'을 완성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자기실현'과 '자기초월'의 차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타고난 능력과 가능성을 제대로 실현시켰다면 '자기실현'이겠지만, 자신을 희생시킴으로써 좀더 위대한 어떤 것을 성취했다면 '자기초월'의 행위일 터이다. 우리는 양 날개로 잘 날아다니는 새, 네 발로 잘 걷는 개를 보면서 대견해 하지만 감동까지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한 발을 잃고 세 발로 걷는 개, 혹은 교통사고로 두 손을 다쳐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보고 감동을 받는 이유는 자기실현을 넘어 자기초월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떤 죽음이라도 '자기실현'의 행위로 볼 수는 없겠지만, '자기초월'의 행위에 속하는 죽음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다. 이슬처럼 사라져간 이 젊은이들의 죽음이야말로 바로 그런 품위 있는 죽음이 아닐까.

유감스럽게도 우리 젊은이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곤 별로 없는 듯하다.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부모의 아픔과 회한, 가족과 친지의 슬픔, 그리고 동료들의 아쉬움만이 다일까. 더욱이 서해교전 용사들이 국민들뿐만 아니라 정부로부터도 잊혀져 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유족들은 토해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이 젊은이들은 많은 소출을 내기 위해 스스로 썩는 한 알의 밀알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들의 죽음은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건 적건 상관없이 수백 배의 소출을 가져올 값진 희생이다.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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