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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48>통일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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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48>통일의 꽃

입력
2004.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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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30일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4학년생 임수경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에 도착했다. 그는 6월21일 서울을 떠나 일본과 독일을 거쳐 열흘 만에야 평양에 들어갔고, 그로부터 46일 뒤인 8월15일 판문점을 통해 남으로 돌아왔다. 분단 이후 판문점을 통해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민간인은 임수경이 처음이었다. 임수경이 혼자 내려온 것은 아니다. 도드라지게 당차 보였으나 어쩔 수 없이 여린 21세 여성이기도 했던 그를 '보호'하기 위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문규현 신부를 북으로 보냈고, 문 신부는 임수경의 손을 잡고 함께 분단의 벽을 넘었다.임수경의 방북은 그 해 3월 고 문익환 목사와 평민당 서경원 의원의 방북과 함께 노태우 정부가 이른바 '공안 정국'을 조성해 정치적 반대파를 탄압하는 구실이 되었다. 그래서 자주·통일 운동보다 실질적 민주주의의 확대를 우선시했던 사회운동권 일각으로부터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임수경은 국제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반세기의 금기를 가볍게 깨뜨리고 감옥으로 직행함으로써 통일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망을 전세계에 증언했다. '통일의 꽃'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이 그에게 주어진 것도 지나친 일은 아니다. 임수경과 문규현은 구속 재판 끝에 그 해 12월 똑같이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형이 확정돼 복역하다가 1992년 말 함께 가석방되었다.

평양에서 임수경이 참가한 세계청년학생축전은 반제 자주, 반전 평화의 기치 아래 주로 사회주의 나라 청년·학생들이 모여 열었던 행사다. 1945년 10월 런던에서 결성된 세계민주청년연맹이 이듬해의 파리 이사회에서 창설을 결정한 이 축전은 1947년 7월 프라하에서 처음 열렸다. 1989년 7월에 열린 평양 축전은 열세 번째 행사였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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