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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김선일씨 죽음이 公的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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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김선일씨 죽음이 公的인 이유

입력
2004.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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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가 먼 이국땅에서 끝내 목숨을 잃고 그렇게도 귀국하고 싶었던 고국에 차가운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김선일씨의 마지막의 절규와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해 한국인의 동포의식을 새삼 깨닫게 된 반면, 테러집단의 반인륜적인 행동에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그런데 그의 죽음에 대한 국민적 애도와 함께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김선일씨의 죽음을 단지 한 개인의 죽음으로만 볼 수 없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첫째 김선일씨는 한국인으로서 이국의 테러범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그것은 공동체로서 한국인의 죽음을 표상한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 이름은 히브리어로 아담이다. 그런데 아담은 보통명사로 인간이라는 뜻이다. 즉 아담은 개인 이름인 동시에 인간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선일씨의 이라크 행적이 어떠했든지 간에 테러범들이 김선일씨를 개인 회사원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보았고 그를 볼모로 삼아 이라크 파병중지를 요구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김선일씨는 개인이 아니라 한국 공동체 일원이며 대표로 여겨졌고 죽음을 당한 것이다.

둘째로 김선일씨는 꿈과 열정으로 가득한 이 시대의 젊은이였다. 그는 한세대 신학대학원에도 잠시 다닌 적이 있는 중동선교의 비전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이라크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경제논리로 좌우되는 전쟁의 비극도 깊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라크의 땅을 밟고 이라크 여인과 결혼을 계획한 것은 기독교 복음전파를 위한 정초작업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의 이런 꿈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짐으로써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척정신을 불어넣었고, 신앙인들에게 복음전파의 열정과 각오를 다짐하게 했다.

셋째로 김선일씨의 살고 싶다는 절규는 언어와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는 인류의 절규이다. 현대 문명사회에서조차 여전히 인종차별과 종교분쟁과 경제논리로 인류가 죽어가고 있다. 인류는 상생(相生)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지구촌시대에 소수의 강대국이 자국만을 위한 정책을 편다는 것은 인류공멸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 문명인이나 미개인이나, 흑인이나 백인이나, 이슬람교인이나 기독교인이나 모든 인류는 살고 싶어 한다. 김선일씨는 '살고싶다'라는 화두를 온 세계 사람들에게 던져주었다. 그런즉 그의 죽음은 이 시대의 인류에게 상생을 촉구하는 절규이다.

/한상인 한세대 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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