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의 한 간부 사원은 매주 금요일 세면도구 등이 담긴 가방을 메고 출근길에 나선다. 업무가 끝나자마자 그는 회사 연수원으로 달려간다. 2001년 토요 휴무제를 도입한 이후 회사에서 마련한 경영학석사(MBA) 강의를 듣기 위해서다. 밤 11시까지 수업을 받고 연수원에서 잠을 잔 뒤 다음날 오후까지 다시 마라톤 강의에 몰두한다. 3월부터 이 강의를 듣기 시작한 그는 "주 5일제 도입 후 처음에는 야외로 놀러도 많이 다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MBA 수강이유를 설명했다.주 5일제 시행 이후 직장인 중에는 어학이나 자격증 시험을 위해 학원을 다니는 등 자기계발에 힘쓰는 학구파가 크게 늘었다. 채용전문 업체 잡코리아가 최근 직장인 76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35.8%가 각종 자격증이나 공무원 시험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일단 배우고 보자'는 심리도 작용하고 있다. 근무 시간이 줄어들면서 회사들이 인적 자원의 효율성, 즉 개인 능력을 중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기업 과장 김모(33)씨도 그런 경우다. 그는 5월부터 영어공부와 함께 MBA 유학 준비 주말반에 다니고 있다. 김씨는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지금은 나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는 게 최대의 무기"라고 말했다.
여행과 각종 취미활동을 즐기다 뒤늦게 자기계발 대열에 합류하는 직장인들도 줄을 잇고 있다. 2001년 주5일제를 시작한 외국계 회사 과장 박모(34)씨는 주말에 여행을 가거나 TV 시청과 낮잠으로 소일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동료들이 영어학원을 다니거나 컴퓨터 강좌를 듣고 있다는 걸 안 뒤로는 토익 950점을 목표로 영어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주말에만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는 투잡스(two jobs)족도 눈에 띈다. 다음달부터 주5일제를 실시하는 외국계 투자사에서 일하는 김모(29·여)씨는 지난 주부터 칵테일 기술 학원에 다니고 있다. 평소 관심이 많은 칵테일 제조 법을 배워 금·토요일 저녁 칵테일바에서 바텐더로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이다.
그러나 주5일제는 양날의 칼이라는 지적도 있다. 우리 사회는 주5일제를 받아들일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그저 하루 더 노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없다는 얘기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연구위원은 "술과 단순 오락 등에 빠지면 주5일제 시대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다"며 "경쟁사회에서 살아 남는 길은 자기 계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종수기자 jslee@hk.co.kr
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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