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에 출범한 사법개혁위원회가 그동안 논의하고 준비하여 온 사법 개혁 과제들의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사법개혁위원회는 법률가의 양성과 충원, 법원의 기능과 구성, 그리고 민사, 형사 재판 절차의 개혁 등 법조인, 사법부 그리고 사법 서비스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변혁을 모색하고 있다.제도 변혁에 대한 요구는 현 제도에 대한 불만에서 출발한다. 법학 교육과 법조인 양성 및 선발 방법에 대한 불만은 이미 임계점에 이르렀다고도 볼 수 있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포진한 수많은 고시학원과 고시생 군상은 법대 교수들에게나, 고시를 준비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그다지 유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웬만한 동네의 한적한 모퉁이에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하는 고시원이라는 이름의 건물을 지나칠 때마다 어쩐지 일종의 '수용시설'을 대하는 듯한 비장감과 우울함이 교차하여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온갖 신고와 간난을 이겨내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시나리오만으로는 더 이상 현행 제도가 가지고 있는 불합리와 부조리를 무신경하게 덮어 버릴 수는 없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과 여타 사회제도가 그동안 그만큼 나아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참을 수 있었던 불합리와 부조리가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사법시험에 합격한다는 것 자체가 더 이상 해피 엔딩의 진부함으로 써먹기에 충분한 감동과 클라이맥스를 자아내는 사건이 되지 못한다.
매년 100명이 채 안 되는 '영예의 합격자'를 배출하였던 시대(1977년 이전), 그리고 연간 300명의 합격자가 배출되었던 시대(1981∼95년)와는 달리 사시합격자 1,000명 시대(2001년 이후)에 이른 요즈음에는 사법시험 합격은 또 다른 2년간의 가열찬 점수 경쟁의 서막에 불과하다. 사법연수생을 위한 개인지도나 특별과외반이 생겨난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들리는 이 시점에서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 제도가 가지는 문제의 핵심은 법률가 선발 및 선별이 '한 판 승부'(사법시험 합격 여부) 또는 '두 판 승부'(사법시험 성적과 사법연수원 성적)로 결판난다는 데에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한 번 또는 두 번의 평가가 정작 당사자들이 실제로 법률가로서 활동하면서 그 진정한 능력을 드러내기 전에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강의와 시험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데 필요한 능력과 실제로 법률사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이 같을 수 없다고 본다면, 지금의 제도는 법조인 선별에 있어서 상당한 왜곡을 강요하는 제도이다.
로스쿨 제도와 법조 일원화에 거는 기대는 이와 같은 '한 판 승부' 또는 '두 판 승부'가 강요하는 왜곡의 구조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제도가 마련될 수 있다는 데 대한 기대이다.
수만 명에 이르는 '고시낭인' 양산을 피하기 위하여는 사법시험 합격률이 높아져야 한다는 점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법조인 선발과 변별이 여러 단계에서 여러 평가 주체에 의하여 이루어질 뿐 아니라, 수년간 법률업무를 실제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능력을 평가에 반영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두 번의 시험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왜곡된 구조는 혁파되어야 한다.
돈도 없고 '빽'도 없지만 명석한 두뇌와 강인한 의지를 밑천으로 각고의 노력 끝에 고시에 합격하여 출세하는 '성공신화'는 어쩌면 더 이상 불가능할지 모른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던 가장 확실한 신분상승과 인생역전의 기회가 봉쇄된다고 아쉬워하기보다는, 고시에 합격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졸지에 엄청난 프리미엄을 누리던 어수룩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김기창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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