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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와 나]<10>'뽀빠이' 이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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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와 나]<10>'뽀빠이' 이상룡

입력
2004.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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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다. 그러나 나의 맘속까지 어루만진 큰 인연은 단연 한국일보다. 내가 ROTC 탱크소대장으로 예편하고 23가지 외판원 생활을 거친 뒤 초라하게 TV에 데뷔한 다음날 아침 한국일보와 자매지였던 일간스포츠는 나를 이렇게 알렸다. "고려대 응원단장이며 미스터 고려대였던 엘리트 지성인 코메디언 드디어 탄생." 나에겐 제2 인생의 문을 열어준 기사였다.다음날부터 나는 바빠졌고 꿈 같은 생활이 시작됐다. 그러니 이 어찌 보통 인연인가. 그 인연 덕분에 나는 미스코리아 선발 지방대회 사회자로 종횡무진했고, 50명이 넘는 미스코리아들과 함께 전후방을 누비는 아름다운 행운도 누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국민의 건강을 선도하는 '거북이마라톤'이창설돼 매월 셋째주 일요일 아침 7시면 출발지인 남산 국립극장(지금은 남산식물원) 앞에서 시민들의 기(氣)를 돋우는 사회자로 활약하게된 것이다. 지금까지 25년간 나는 셋째주 일요일이면 무조건 한국일보 행사에 차출됐다. 처음엔 '내가 잘나서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개그맨은 모두 출연을 거절했다고 했다. 출연료가 매우 적은데다 새벽에 다섯 시간을 소리지르기 싫어서다.

그럼 나는? 그래, 뽀빠이에게 의리를 빼면 남는 게 뭐 있냐. 나의 세상 문을 열어준 한국일보인데, 그 정도의 봉사야 당연한 거지, 라고 생각하고 새벽을 가른다. 우리나라 신문사 행사 중에서 가장 건전하고 전통있는 이벤트인데, 까짓것 무료봉사면 어때, 더구나 나를 보고 좋아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매번 수백명씩 늘어나는데…. 회사 입장에서 돈도 되지않는 일인텐데 그토록 진지하게 행사를 이어오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일보의 저력을 느끼게 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번도 거른 적이 없는 정말 멋지고 고마운 행사다.

그리고 1987년 내가 '결식아동 도시락 싸주기'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도 한국일보는 기꺼이 동참해 힘을 주었다. 한국일보는 글자 그대로 한국사람이 일일이 보고 좋아하는 신문이다. 언론의 사명과 세상의 정도를 아는 신문이라는 얘기다. 뿌리가 있고 세찬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문 아닌가. 오늘 아침도 아파트의 문을 열면 제일 먼저 와있는 신문이 한국일보다 .

1996년, 내겐 6·25 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던 사건이 있었다. 난 평생을 살면서 한번도 허세를 부리거나 남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 젊은 날부터 28년 동안 어린이를 위한 친구로 일해왔다. 제2의 방정환이 되고 싶었고 그분을 닮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왔다. 실제로 567명의 심장병 어린이가 무료수술을 통해 새 생명을 얻었다. 그들은 지금 다 성장해 30대 안팎이다. 심장병 수술을 받은 어린이가 500명을 돌파했을 때 정부로부터 국민훈장도 받았다.

그런데 난데없는 벼락이 내리쳤다. 내가 심장병 어린이 수술을 빙자해 돈을 챙겼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그때 모든 언론은 나에게 돌을 던졌다. 나에게 확인전화 한번 없이 누가 조작하는 얘기만 듣고 마구 써댔다. 난 자살까지 생각했다. 어떤 기사는 '한명도 수술하지 않았다'고 했고 또 다른 기사는'이상룡이 벤츠600을 타고 다닌다'고도 했다. 나는 벤츠 문고리도 만져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때 유일하게 한국일보만 나를 정확하게 취재해 엉터리 기사를 쓰지않았고, 후에 무혐의로 확정되자 '정치적 음해라'라는 기사를 크게 보도해주었다. 정도를 아는 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후에 들었는데 한국일보만 "이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 두고보자" 며 안내기로 했단다. 나는 그때의 고마움을 간직하며 거북이마라톤을 내 일처럼 해오고 있다.

난 지난 주 회갑을 맞았다. 세월이 흘러 이젠 인생을 사회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푹익은 과일처럼 50년이 된 한국일보의 무궁한 발전을 빌며, 늘 함께하고 싶다. 한국일보도 언론의 본분을 지키며 거북이처럼 지치지 말고, 침착하고 끈질기게 100년을 향해 매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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