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랍사실이 알려진 21일 정부는 이라크 무장단체와의 협상을 위해 대책반을 현지로 급파했다. 그러나 이라크에 도착하기도 전에 김씨가 피살되는 바람에 협상팀이 실력을 발휘해 볼 기회도 없었지만 실제 협상에 들어갔어도 큰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협상팀에 중동전문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4월 3명의 일본인이 납치됐을 때 정확히 파악한 현지정세를 바탕으로 무사히 귀환시킨 일본의 경우와 크게 대비되는 것이다. 일본은 중동지역 전문가와 정보요원을 전략적으로 키운 덕을 봤다는 것이다.김씨 사건을 계기로 외교부의 '편식외교'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있다. 미국과 일본 등으로 집중되는 인력편중 현상이 거듭되면서 아프리카나 중동 등의 지역에 대한 전략적 관리가 부족했으며 결국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외교부의 편중된 인력구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외교부의 핵심보직은 '워싱턴스쿨'로 대표되는 북미라인이 장악해 온지 오래다. 90년대 중반부터 동북아중심 외교의 수요로 이른바 '재팬스쿨'이나 중국쪽 라인이 또 다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북미나 동북아쪽 공관근무를 거치지 않으면 핵심보직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히 아프라카나 중동, 중남미 등의 지역담당국은 기피의 대상이 됐다. 초임 외교관들마저 경력관리에 나서 외교부에 입부한 뒤 선택하는 연수대상지도 대부분 미국이나 중국, 일본으로 치우쳐 있다. 외교부 본부에서는 그래서 인사 철마다 '소외지역' 담당과장들이 "사람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하기 일쑤다.
정책방향과 인력이 미국과 일본 등의 선진국으로 쏠리면서 외교부는 지역 전문가 양성에 사실상 손 놓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아랍어 전문인력은 모두 18명으로 전체 외교관 900명의 2%. 이들이 주로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와 중동지역 28개 공관을 담당하고 있다. 그나마 현재 아중동 지역 공관에 나가 근무중인 전문인력은 8명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번 사건의 중심지인 이라크 공관에 아랍어 가능자가 1명이라도 있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따름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본부 국장이라도 바라보려면 미국이나 동북아지역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데 누가 아중동지역국에 뼈를 묻겠느냐"고 되물었다.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수천명을 이라크에 파병을 하면서 미리 수요인력을 대비하지 않은 것은 큰 문제"라며 이번 사태와 관련한 외교부의 준비부족을 지적했다. 적어도 중동지역에 대한 전략적 접근은 필요했다는 것이다.
외교부 내에 지역전문가들이 자신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지역전문가에게 인사상 인센티브를 부여하자는 안부터 외교안보연구원에 지역전문가 양성프로그램을 구축하자는 것까지 방안은 다양하다. 직업외교관 출신인 열린우리당 정의용 의원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과 함께 외교관들이 선진국 근무만 하려는 자세를 버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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