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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시청자들이 불러낸 재벌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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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시청자들이 불러낸 재벌2세

입력
2004.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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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에는 세가지 성이 존재한다. 남성, 여성 그리고 재벌 2세. SBS ‘천국의 계단’부터 ‘발리에서 생긴 일’, ‘파리의 연인’, MBC ‘불새’, ‘황태자의 첫사랑’ 모두 재벌 2세가 주인공이다.MBC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병원장 아들 지훈(이현우)이나 ‘사랑을 할거야’의 대기업 이사 성훈(강석우)까지 더하면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은 ‘돈이 인생의 문제가 아닌’ 사람들로 즐비하다. 드라마만 보면 한국의 경제 수준은 끔찍할 정도로 높다. 주인공 셋 중 하나는 재벌 2세니까.

하지만 영화 ‘올드보이’의 우진(이 친구도 재벌 2세군)이 그랬던 것처럼 질문을 바꿔보자. “왜 드라마엔 재벌 2세만 나오느냐”가 아니라 “왜 사람들은 재벌 2세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느냐”로. 시청자는 영악해지는데 왜 재벌 2세 드라마가 요즘 더 인기일까. 신분상승 욕구? 발리도 나오고 파리도 나오니까?

일단 허무한 답 하나. 요즘 재벌 2세는 흥행을 위한 일종의 도구일 뿐이다. 그건 모든 드라마에 남녀 로맨스가 등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재벌 2세가 나온다는 이유로, 황당한 드라마 ‘천국의 계단’과 꽤 근사한 연애 심리극 ‘발리에서 생긴 일’, 여성의 일을 적극 권장한 ‘결혼하고 싶은 여자’, 그리고 KBS ‘꽃보다 아름다워’ 같은 작품을 다 같은 드라마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제작상 한계로 디테일한 전문성을 가진 드라마가 많이 제작되기 힘든 상황에서, 재벌 2세는 볼거리나 갈등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그래도 왜 재벌 2세냐고 묻는다면, 이건 어떨까. ‘발리에서 생긴 일’의 수정(하지원)부터 ‘사랑을 할거야’의 옥순(김미숙)까지, 여주인공은 모두 주장이 분명하고 생활력도 강하다. 반대로 재벌 2세는 어머니가 없거나 이혼했거나 아니면 인간미 없는 성격을 가졌다. 그래서 그들은 ‘가난하지만 인간적인’ 여주인공의 도움을 받아 변하기 시작한다.

기존 드라마에서는 재벌 2세가 심지어 착하기까지 해서 그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여자들끼리 대결해야 했다면, 요즘 여자들은 ‘돈만 많은’ 재벌 2세들을 고치느라 바쁘다. 평범하지만 올바른 사람이, 돈은 많지만 인격적으로는 한심한 사람을 바꿔나가고, 재벌 2세 혹은 그로 대표되는 상류층은 ‘인격개조’라도 시켜야 할 그런 부류인 것이다.

시청자는 평범한 여주인공이 그들을 바꾸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물론 현실에서는 ‘턱도 없는’ 소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드라마 속 재벌 2세 주인공의 친구들이 대부분 ‘재수없는’ 캐릭터인 것에는 이유가 있다. 대중이 보기에 요즘 상류층은 ‘돈만 없다면’ 경멸하고 싶은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돈에 비굴하지 않은 주인공을 지지한다. 재벌 2세가 나오는 드라마는 대부분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짜증나는 현실을 벗어나 오락과 위안을 찾는 대중의 또 다른 현실이 들어있다. 시청자는 영악하다. 특히 요즘은.

강명석/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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