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함께 살아오다 충동적으로 '그래 좋다, 이혼하자' 하는 부부들에게 법원이 덥석 '그렇게 하시오' 하는 꼴이니 마치 남의 가정파탄에 들러리 서는 기분입니다."현행 이혼제도가 이혼을 방조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일선 법관들 사이에 제기돼 향후 사법개혁위원회의 이혼제도 개선 논의에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대전지법 논산지원 유재복 판사는 최근 법원 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현행 협의이혼 절차가 너무 형식적이어서 부부가 이혼의사 합의를 고집하면 법원은 확인해 줄 수밖에 없어 법원이 이혼을 조장하는 측면까지 있다"며 현행 이혼제도의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유 판사는 특히 "이혼의 80% 이상이 협의 이혼"이라며 "업무량이 늘어나더라도 판사가 사건을 선별해 신중히 판단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판사가 협의이혼 의사를 바로 확인해 줄 사건 이혼 전에 심사숙고할 시간을 둘 사건 전문상담기관의 상담이나 부부생활 클리닉 프로그램 참여를 거치도록 할 사건 등으로 구분해 각각의 상황에 맞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전지법 이동연 판사도 글을 올려 "당사자 간의 협의이혼은 절차가 너무 간단해 이혼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는 반면 재판상 이혼 절차는 너무 복잡하다"며 "두 제도의 단점을 보완해 '일정한 절차나 기간, 기준을 준수하면 법원이 이혼을 승인해 주는 방식'으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는 이혼 전 일정기간의 '숙려(熟慮)기간' 및 전문상담기관의 상담 의무화 등 이미 제시된 이혼제도 개선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서울가정법원도 국회의원 교수 변호사 보건복지부 관계자 등 외부위원 25명이 참여하는 '가사·소년 제도 개혁위원회'를 내달 5일 구성, 이혼제도의 문제점 등을 본격 논의키로 했다.
이 같은 논의에 대해 배금자 변호사는 "재산을 빼돌리기 위해 거짓 이혼을 하거나 이혼 절차를 잘 몰라 재산분할권 등을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협의이혼 과정에도 법원의 심리가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이혼 전 숙려기간과 상담 의무화는 위헌적 요소가 있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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