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무원사회에는 세 종류의 엘리트집단이 존재한다. 어떤 공무원임용시험을 통과해야 하는가와 그 조직이 얼마나 힘이 센가, 두 가지가 엘리트집단을 가르는 기준이다. 그 기준을 적용하면 검찰과 재정경제부, 외교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3대 엘리트공무원집단이라는 데에 예나 지금이나 이론이 없다. 이들 조직에 소속된 핵심인력들은 사법 행정 외무 등 3대 고시를 거쳐 공무원생활을 시작하고, 그들 나름의 조직문화를 체득한다. 때문에 하는 일은 물론 업무 스타일과 정서, 때로는 말투까지도 차이를 보인다.그리고 이들이 겪은 '수난사'도 모양새가 다르다. 힘있는 엘리트집단은 늘 정권차원의 감시대상이 돼 왔고, 때로는 칼을 맞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검찰이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개혁의 도마 위에 오르고 조직원들이 반발하는 '통과의례'가 반복되면서 '검란(檢亂)'이란 단어는 이제 보통명사가 됐다. 그 '검란'은 노무현 정권 들어 1년반이 다 돼가지만 아직 물밑으로는 진행형이기도 하다.
재경부라는 경제부처도 속앓이가 많았다. 옛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하나가 돼 재정경제원이라는 공룡부처로 탄생할 때만 해도 무척 잘 나갔고 무소불위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제공자 중 하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업무와 권한의 상당 부분을 빼앗겨야 했고 지금도 그 후유증이 크게 남아 있다.
반면 외교부는 기억에 남는 수난사가 별로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시절 외교관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을 되살려 취임 직후 호되게 매를 들려다 해외순방 때 외교부가 연출한 극진한 의전을 받곤 마음을 접었다는 얘기 정도만 남아있다.
외교부 역시 권력집단이다. 외교관은 해외동포사회에서는 '왕'이다. 중하위직도 최소한 귀족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견제장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국정원 파견원의 정보보고 정도만 있었을 뿐이다. 대대로 방치해두었다는 말이 맞다.
간혹 외국에 나가 보면 그런 류의 얘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지난해 태국에서 만났던 한인 여행사 사장은 '익명'을 전제로 한참동안 비슷한 내용의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국민 보호라는 그 사람들의 존재 이유는 별로 찾기 어려워요. 향응과 이권, 품위유지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아요. 때로는 휴가비용을 동포사업가들에게 떠 넘기는 경우도 있어요." 그는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배척할 수도 없어요. 여기서 귀화한 동포들은 그 사람들에게 잘못 보였다가 (한국 입국)비자 안 내주면 큰일이죠. 진짜 왕이에요"라고 했다.
왕은 제 역할만 제대로 하면 탈이 없다. 상당수 외교관들은 관존민비형 왕에 가깝다. 그들은 결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겠지만, 동포들이 겪고 느끼는 것은 '동포들은 아랫것'이다. 이런 관계인식에서는 한국사람이 실종됐을 지도 모른다는 '첩보'가 들어와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전쟁 난 나라에서 한국사람이 사라졌다고 해도 그런 일 모른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런 점에서 그 여행사 사장이 들려준 일본대사관 얘기는 흥미롭다. 일본 대사관은 그 나라 동포들에게 벼룩시장이다. 제 집 드나들 듯 대사관에 들어가 칠판에 필요하거나 팔려는 물품을 적고 대사관은 이를 중개한다. 그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물건을 팔고 있던 한 사람이 대사라는 말을 듣곤 깜짝 놀랐고, 우리 처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귀띔도 해줬다. 이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그쪽은 최소한 관존민비형은 아니다.
작은 차이가 한국 사람은 죽이고 일본 사람은 살게 했을 수도 있다. 외교부의 처절한 참회록부터 보고 싶다.
/김동영 사회2부장 dy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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