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다. 지구상에 사고를 막을 정부는 없다."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휴일인 27일 언론사 정치부장단을 급거 초청한 간담회에서 김선일씨 피살사건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그는 "중동과의 직원들은 1년째 밤샘 근무중이다"며 "그런데도 비난이 쏟아지자 '그만 두겠다'는 말까지 나오는 등 공황상태다"라고 말했다. 반장관은 그러나 기자들이 "25일 오전 직원5명이 AP통신으로부터 전화받은 사실을 확인하고도 오후 브리핑때 밝히지 않은 것은 사실을 은폐하려 했던 게 아니냐"고 재차 따져 묻자 역정을 내기에 이르렀다. 반장관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 "우리가 범죄자냐"며 목청을 높였다.
반장관은 이어 작심한 듯 억울함을 털어놓았다. 그는 "미국도 2명의 인질을 구해내지 못했으나 미 국무부를 비난하는 전화는 한 통도 없었다"며 "감정 부풀리기식으로 몰아쳐 장관이 그만두는 사태가 계속돼서는 국제사회에서 존경받지 못하므로 이제 국민들도 정신차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 장관의 이날 발언이 이해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경질설이 나도는 가운데 며칠후면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에 참가하기가 곤혹스런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십분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날 반 장관의 항변은 시기도 잘못된 데다 도를 지나쳤다. 지금 국민들은 초동조치의 미흡으로 살릴 수도 있었던 한 청년이 처참하게 숨져간 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 외교부는 여론의 지탄을 '마녀사냥'이라고 반발하기 앞서 유족과 국민들에게 겸허하게 사죄하고 이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할 때다.
/김정곤 정치부 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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