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는 '일출지역'을 뜻하며, '유럽' 즉 '일몰지역'의 대립 개념이었다. 물론 아시아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통합된 실태를 전제하지 않았다. 그 후 근대자본주의의 '세계화' 과정 속에서 아시아는 동방 끝까지 확대됐고, 비로소 지구 전체의 세계가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라는 지역개념이 탄생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실태로서의 동아시아 지역은 분열되고 분할되었다.이 분열과 분할 과정 속에서 한국과 일본 간에는 '불행한 역사'가 기록됐고, 또한 '감정의 기억'도 양국 국민의 심층심리에 새겨져 전승됐다. 그리고 양국은 근대, 특히 그 부(負)의 측면의 포로가 됐다. 이와 더불어 각 전통은 근대의 부에 대한 비판력, 저항력을 상실해 갔다. 그렇다면 이들 부의 유산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나아가 어떠한 한일관계를 구축할 것인가.
한일관계는 아시아 속의 한일관계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부의 유산의 실천적 '해체' 없이는 한일관계의 '진정한' 구축도 없을 것이다. 또한 한일관계의 진정한 구축이 없는 '세계 속의 한일관계'는 공허하거나 무력할 것이다.
아시아는 근대 이후 타자로부터 주어진 공간 개념이다. 또한 이는 구미 중심적 근대주의가 내포된 가치 개념이었다. 그 속에는 자기이면서도 자기가 아닌 이율배반이 함축돼 있었다. 근대 일본의 '아시아주의'가 연대와 침략의 모순적 결합 양상을 띠고 있었음은 그 전형이었다. '탈아'(脫亞)와 '입아'(入亞)의 변증법적 모순이나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의 형성과 확산 역시 그 예에 속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서는 '아시아 속의 일본'보다 '아시아와 일본'이나 '일본의 아시아'가 압도적인 위세를 떨쳤다.
한편 근대 한국은 동아시아에서의 연대와 자주의 상극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상극을 상생으로 바꾸어 보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무산되고 말았다. 더욱이 아시아가 '야만, 퇴보'의 상징이던 시대에 '아시아 속의 한국'은 결국 표상이나 허구에 불과했다. 당시 아시아 속의 한일관계는 존재 기반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일 양국은 각각 한미, 미일 동맹을 축으로 '미국의 아시아'에 편입됐다고 볼 수 있다. 거칠게 말하면 동아시아 지역은 미국에 의한 일종의 분할통치 하에 있는데 그 속에서 한일 양국은 각자 미국과의 '공범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한미일 동맹은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에 다대한 공헌을 해 왔다. 그러나 그 역기능을 들자면, 이는 냉전 시대의 산물이며 또한 '불행한 역사'의 극복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이는 동아시아에서의 냉전적 사고와 근대의 부의 유산을 재생산하는 일종의 이념 틀로 기능할 뿐 아니라, 역내 국가 간의 신뢰와 화해를 저해하고 있다. 그러한 뜻에서 아시아 속의 한일관계는 아직도 존재 기반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아시아 속의 한일관계를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불행한 역사'와 '근대의 부의 유산'을 극복해야 한다. 불행한 역사는 한일 간의 심리적 장애를 유발하거나 '불행한 과거'를 인질로 삼아 '불행한 현재'를 이끄는 악순환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미래지향적인 아시아와 그 속의 한일관계를 논하는데 지장이 될 수 있다.
'역사의 극복'은 한일 양국의 현재와 미래에 제시된 공통의 과제이다. 이는 과거의 부를 돌이켜 현재와 미래의 정(正)을 끌어내는 틀, 또는 그러한 '지평'을 여는 계기를 조성하기 위한 과제임을 뜻한다. 먼저 우리는 자기의 역사성을 자각하고 타자의 역사성과의 연관작용을 지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역사의 극복'을 위한 불가결한 조건이다. 다음으로 자기와 타자의 역사성의 상위(相違)가 확인되어야 한다. 이는 '역사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서로 공유하여 진정한 대화를 성립시키기 위해 빠트릴 수 없는 조건이다.
한편 '근대의 부의 유산'은 타자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여기서 타자란 일본에게는 주로 구미제국을 뜻하나, 한국에서는 주로 일본을 가리킨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 역시 한일공통의 과제이다. 이는 타자의 근대나 전통을 비판함으로써 자기의 그것을 정당화함이 아니며, 자기를 비판하여 타자를 정당화함도 아니다. 또한 이는 자기의 전통에 회귀하여 타자의 부의 유산을 비판함도 아니며 근대 자체를 부정함도 아니다.
그 극복을 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자기의 부의 유산을 비판 성찰해야 한다. 그것은 근대 특히 그 부에 의해 '표상화'된 전통을 '해체'하고 전통 속의 정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지적 실천, 즉 전통의 비판 성찰을 수반한다. 둘째 이러한 자기의 비판 성찰로 얻어진 성과를 타자와 공유해야 한다. 셋째 자기와 타자의 부의 유산의 상위가 확인되어야 한다.
나아가 한일 양국은 동아시아에서의 '규범적' 지역질서의 구축을 위해 협동해야 한다. 이에 따른 지리학적 상상력도 없이 세계 속의 한일관계를 논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 세계적으로 지역화와 세계화는 동시 진행되고 있으며, 동아시아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지역화는 한일 양국을 포함한 역내 국가들 공통의 가치·신념 체계나 이념·규범의 개념화, 제도화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김봉진 기타큐슈 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48세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동 외교학과 대학원 석사, 도쿄대 대학원 학술박사 저서 "동아시아 개명 지식인의 사유공간" (규슈대학 출판회, 2004년) 등
협찬 : SK주식회사
■월드컵 공동개최 계기 日, 한국호감도 높아져
일본 사람들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2003년 10월 일본 내각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인 응답자중 55%가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이는 1978년 조사를 처음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로, 미국(75.8%)에 이어 두번째로 친근한 국가에 꼽힌 것이다.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응답은 41%였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친근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양국간에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발표된 98년 이후 지난해까지 5년 연속으로 친근감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그 전까지는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 언론은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88년에 와서야 한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때 일본인들은 이웃나라 한국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일본인들의 친근감을 높인 결정적인 계기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한 2002년 축구 월드컵이라고 할 수 있다. 98년 공동선언 이후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일본문화 개방 조치와 활발한 인적 교류 등도 큰 몫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의해 한류열풍이 분 올해 일본인들의 친근감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변수도 많다. 과거의 조사를 살펴보면 역사문제와 독도를 둘러싼 영토문제 등이 불거질 때면 친근감 비율이 요동을 쳤다.
일본 보수 우익들이 '종군위안부'의 교과서 기술에 반발, '만드는 모임'을 조직한 96년 조사에서 '친근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35.8%('친근감을 느끼지 않는다' 60%)까지 떨어진 것은 좋은 예이다.
그러나 최근의 한일 관계는 민간 사회·문화 부문의 교류 증가로 과거보다는 튼튼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긍정론도 나오고 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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