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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와 나]<8>84미스코리아 眞 최영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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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와 나]<8>84미스코리아 眞 최영옥씨

입력
2004.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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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미스코리아 진! 참가번호 28번 미스 서울 진 최영옥!"아나운서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내가 미스코리아 진이라는 소리였다. 포토제닉과 인기상에 이어 진까지? 잠시 꿈인가, 생시인가 혼란스러웠다. 곧 눈 앞의 객석이 뿌옇게 흐려져 왔다. 왕관을 쓰면서도, 휘장을 두르면서도 내가 미스코리아가 되었다는 것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대학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주위의 권유에 떠밀리듯 경험 삼아 나간 대회였다. 나와 한국일보와의 인연은 그렇게 정신 없는 와중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미스코리아들이 그렇듯, 나 역시 그 날 이후 왕관을 물려주기까지 1년 내내 한국일보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직후부터 군 부대 위문과 양로원 방문, 사회봉사 등의 행사가 줄을 이었다. 언제나 한국일보와 함께였다. 거북이 마라톤,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도 참석했다. 특히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던 군 부대 방문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은 미스코리아가 왔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정신 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 미스 코리아가 어떤 의미인지 얼떨떨하기만 하던 마음은 국제 대회인 미스 유니버스에 출전하면서 비로소 또렷해졌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대회에 참석한 각국 미녀들은 매스컴의 집중적 관심을 받았다. 말그대로 그 나라의 '미의 사절'이요, 국가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자국 상품을 알리는 '홍보 대사'였다. 국가 차원의 후원을 받는 다른 나라 후보들이 부럽기 짝이 없었다.

미스코리아는 내게 평생의 꼬리표이자 내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는 순간 중 하나다. 덕분에 모든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인 화장품 모델까지 되었고, 졸업 후 미국에서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할 때도 가장 중요한 이력으로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요즘 미스코리아를 두고 말들이 많지만, 젊은 시절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와 내면을 갈고 닦아 남들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미스코리아 시절 한번도 '공인'이라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다. 그 덕분으로 지금껏 내 일을 하며 자기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을 수 있었고, 지금 나의 두 아이들은 엄마가 미스코리아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한다.

내가 미스코리아가 되고 3년 뒤 동생인 연희도 미스코리아 선에 당선되었다. 한 집안에 미스코리아가 둘이나 나왔으니, 한국일보와의 인연도 보통이 아닌 셈이다. 더욱이 연희는 미스 월드에서 2위를 차지해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렸다.

나는 요즘도 미스코리아들의 모임인 녹원회를 통해 다른 미스코리아 선후배들과 사회봉사 활동에 노력하며 한국일보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서울지역 예선에서는 심사위원을 맡아 20년 전 내 모습을 후배들과 비교해 보기도 했다. 미에 대한 기준도 많이 바뀌었다. 한국일보와 역사를 함께 해 온 미스코리아 대회가 모든 이들에게 더욱 사랑받을 수 있도록 발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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