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다섯의 나이와 피하지 못한 육체의 쇠락을 잊고 싶었던가."쓰러질 때까지 작품을 하겠다." 7월 1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는 회고전 '김흥수 인생 85 초대전'을 앞두고 원로 서양화가 김흥수 화백은 기자들 앞에서 의욕을 숨기지 않았다.2002년 이후 척추 디스크, 혀 종양, 팔 골절 등으로 수술을 반복, 거동조차 어려웠던 노(老)작가는 다시 찾아온 건강을 만끽하는 듯 최근 나들이가 잦아졌다. 비록 소품 전시에 그쳤지만 지난달 국내에서 7년만에 개인전을 열었으며 이번에는 초대전을 개최한다. 다음달 28일부터는 세오갤러리에서 회고전도 연다.
지금 김 화백의 곁에는 92년 결혼한 장수현(42)씨가 지키고 있다. 마흔 세 살이나 어린 부인과의 결혼은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러나 '하모니즘(조형주의)'의 창시자 김흥수 화백의 미술인생은 그 결혼보다 더 화려하다. 프랑스 파리 뤽상부르미술관, 러시아 모스크바 푸슈킨미술관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박물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한 것은 화가로서 그의 성공을 말해준다.
회고전인 만큼 이번 전시는 그의 독창적 조형언어 하모니즘을 도출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1936년 선전 입선작 '밤의 실내정물'부터 '절터' (1964년) 같은 프랑스 유학시절의 반추상 그리고 구상과 추상, 동양과 서양을 하나의 화면에 담은 '하모니즘' 회화 대표작까지 드로잉 37점과 유화 24점을 볼 수 있다. 여인의 누드 드로잉 등 그의 작품 경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삶도 함께 보여준다.
자화상과 5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전시 포스터 및 사진 등 그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자료들도 전시장에 자리잡는다. 화재로 불탄 '무한'(1970년) 등 소실 작품 가운데 7점을 복원 또는 실사로 되살려 선보인다. 이번 전시작은 모두 김 화백이 소장하고 있던 것들이다.
김화백은 기자에게 미국 펜실베니아대에 재직하던 77년 '하모니즘'을 선언하기까지 겪었던 예술적 고민을 회고했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모방해 추상으로 가면 그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53년 나의 미술세계는 하모니즘을 지향하겠다고 처음 생각했지만 20년이 지나서야 하모니즘의 세계에 이를 수 있었다." 원로의 노파심일까, 70년 가까운 예술인생에 부끄럼이 없다는 자신감일까. 쓴소리도 덧붙인다. "남의 작품을 모방하고도 대가가 돼 화단을 문란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는 안된다. 나는 후배들에게 남의 작품을 모방하지 말고 늘 창조성을 갖고 자신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라고 강조하고 싶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흥수 미술관이 운영난으로 문을 닫았지만 김흥수 화백은 최근 건강이 회복되면서 영재미술교실은 재개했다. "처음에는 10분 앉아 있기도 힘들더니 차츰 2,3시간은 버틸 수 있게 됐다. 그래도 대작 하기에는 벅차더라.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큰 작품도 만들겠다. 그는 식지않는 창작열을 발산한다. 부인 장씨는 "예전에 창작한 큰 그림들을 손 보며 지낸다"고 귀뜸했다.
전시는 20일까지 열린다. 28일부터 한달간 세오 갤러리 개관 기념으로 하모니즘 회화를 위주로 또다른 회고전이 이어진다. (02)399-1151~3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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