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를 한국해로 인식한 최초의 지도는 포르투갈의 수학자이자 천체학자인 마누엘 고딩유(1563∼1623)가 1615년 출판한 '아시아 전도(MAPA DA ASIA)'이다. 이 지도는 지금의 동해를 처음 '한국해(Mar Coria)'라고 표기했다.대한해협을 '한국해(MER DE COREER)'로 표기한 지도 가운데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지도는 프랑스의 탐험가이자 상인인 장―뱁티스트 타베르니에(1605∼1689)가 1679년 제작한 '일본열도지도'이다. 이 지도는 '타베르니에의 여행서'라는 책 안에 수록되어 있다. 대한해협은 18세기 말 만들어진 명칭이다.
대한해협의 '한국해' 표기는 특히 서양 고지도 중 일본지도에 많이 사용됐다. 그 예로 18세기 중엽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지도 제작자인 자크 니콜라스 벨렝(1703∼1772), 엠마누엘 보웬(1714∼1767), 홀트롭의 지도를 들 수 있다. 벨렝이 1752년, 1760년, 1763∼72년 제작한 지도, 보웬의 1744년 지도 그리고 홀트롭의 1789년께 지도가 대표적이다.
서양의 고지도 제작자들은 18세기 대한해협 그리고 지금의 남해를 확실히 우리의 해양 영역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타베르니에가 대한해협을 한국해로 표기한 전통을 이어 받은 것이다.
한국해 관련 서양 지도는 그 특성상 1830년 이전 발행된 것을 고지도로 해석할 수 있으며, 그것은 모두 6단계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한국해라는 인식이 등장한 시기(1600∼1700년 이전), 제2기는 한국해 표기 형성기(1700∼1735년), 제3기는 탐사와 실측 정보가 포함된 한국해 표기 정착기(1735∼1790년)이다. 제4기는 한국해의 인식에 혼란이 생기고 일본의 야욕이 엿보이는 시기(1790∼1830년대)이며 제5기는 표기의 혼란이 더욱 심해지는 1840∼1910년, 제6기는 일본의 팽창주의 야욕이 노골화하는 1910년 이후이다.
제1기에 해당하는 고딩유와 타베르니에의 지도를 놓고 볼 때 당시 지도 제작자의 초기 한국해 인식은 지금의 동해와 대한해협을 아우른 것이다. 이 시기의 서양 고지도는, 형태는 원시적이지만 한국해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돈수·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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