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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외교부 개혁은 고시 폐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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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외교부 개혁은 고시 폐지부터

입력
2004.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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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 피살 사건과 관련해 외교통상부 직원 두 명이 AP 통신 기자로부터 피랍에 대해 문의를 받고도 상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외교안보 라인 전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외교부 직원들의 무사안일한 근무 태도가 문제시되었던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2001년 중국에서 있었던 한국인 처형과 관련된 외교 분쟁에서도 중국 측이 우리 대사관에 보낸 팩스 문건이 발견되면서 대통령까지 나서 유감을 표명하는 대형 사건으로 비화된 적이 있다. 비슷한 사건이 외교부에서 계속 발생하는 원인을 찾고 근본적인 대책을 논의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외교부 관련자 몇 명이 처벌을 받고 장관이 물러나는 차원에서 해결될 수 없는 중대 사안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선적으로 외교 실무자들의 무사안일과 무능을 탓해 왔다. 현재 일선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외교관들은 어려운 외무고시 관문을 통과하였으며 적지 않은 수가 외국 명문대학에서 연수과정을 거친 자원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외교관 충원 및 훈련 과정이 급변하는 글로벌 시대의 외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데 있다. 어려운 경쟁시험을 통과하고 해외 연수까지 받았으니 외교관 자질은 충분히 갖추었을 것이라는 가정은 산업화 시대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관점이다.

현재 외교관 충원의 대표적인 방식인 외무고시는 건국 직후 고등고시행정과 3부로 시작된 전형적인 국가고시이다. 시험 방식도 특정 과목을 집중적으로 준비하여, 규정된 형태의 문제에 대한 답안을 일정한 방식에 의해 써야 합격할 수 있는 전형적인 암기형 시험이다. 이런 식의 공부는 외교 일선에서 요구되는 실질적인 외교관의 능력과 큰 관계가 없다.

외무공무원은 다른 국가 관료 체계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그들에게는 급변하는 국제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탄력적인 사고와 세련된 감각, 다양성을 인정하는 시각 등이 요구된다. 흔히들 외교관의 능력을 해박한 국제법 지식, 뛰어난 국제정치적 감각, 그리고 유창한 외국어 실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위 세 가지 중 어떤 것도 현재의 외무고시를 통해서는 길러질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반세기 전 방식으로 선발된 외교관들에게 질적으로 심화되고 양적으로 급팽창한 반세기 후의 외교를 맡기니 외교관 개인 자질이 어떻든 조직 내에서 이번 사건과 같은 치명적인 허점이 결정적인 순간에 자꾸 드러나는 것이다.

제2, 제3의 김선일씨 사건을 막고 우리 외교 역량을 한층 강화하기 위하여 필자는 현재의 외무고시 제도 폐지를 포함한 외교관 충원 제도의 근본적 변혁을 진지하게 제안하는 바이다. 새로운 외교관 충원 제도의 기본 골격은 지금과 같은 폐쇄적인 외무관료 체제를 혁신하여 국제 감각을 갖춘 유능한 인재들을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과감히 채용하고, 지역과 기능에 걸맞은 인원들을 충원하여 각 부서별 전문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 국무부가 주재국 현지 사정에 밝은 건설업체 직원을 외교관으로 특채한 것은 좋은 예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최근 10여 년간 국제화 바람을 타고 길러 놓은 우수한 인재가 많다. 일례로 유수 대학의 국제대학원에서는 매년 거의 모국어 수준의 영어와 제2외국어를 구사하며 국제법, 국제정치, 국제경제 등의 이론적 배경을 포함하여 선진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수준 높은 국제감각을 지닌 졸업생들이 다수 배출되고 있다. 이들에게 외교관이 되기 위하여 암기식 국가고시를 또 한번 부과한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커다란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외교관 충원 방식을 택했던 일본도 이미 암기식 외무고시 폐지를 포함한 거대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용웅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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