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환관과 궁녀/박영규 지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환관과 궁녀/박영규 지음

입력
2004.06.26 00:00
0 0

환관과 궁녀박영규 지음

김영사 발행·1만4,900원

왕조시대 궁궐에는 상징적인 남녀가 있었다. ‘씨 없는 남자’와 ‘살아있는 처녀귀신’. 환관과 궁녀는 왕명을 조정에 전달하는 업무부터 왕의 밑을 닦아주는 일까지 온갖 수발을 들고 있지만 중요한 소임은 한 가지. 왕의 안정적인 성생활과 왕가의 씨내림을 보장하는 것이다. 왕의 여자를 넘볼 수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남근을 잘라 버린 남성이나, 평생 동안 남성의 손길 한 번 닿지 않은 채 젊음을 보내야 했던 여성들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성적 희생자들이다.

‘환관과 궁녀’는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왕의 그림자로 살았던 그들의 탄생과 성장, 소멸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으로 잘 알려진 저자 박영규씨는 이 책에서 환관과 궁녀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입심으로 풀어놓고 있다. 그 동안 중국의 환관 정치를 조명한 박인수씨의 ‘환관_황제의 비서실장’과 우리나라 궁녀의 삶을 추적한 신명호씨의 ‘궁녀’가 있지만, 박씨는 고대사료와 기록을 바탕으로 이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살핀다.

우리 역사에서 환관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처음 보인다. 흥덕왕 원년 왕비가 죽은 후 몹시 슬퍼하여, 시녀들을 가까이 하지 않고, 좌우 심부름꾼으로 오직 환수(宦竪)를 두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나오는 환수가 곧 환관이다. 하지만 중국에는 형벌 중 하나로 궁형(宮刑)이 있어 궁중에서 환관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반면 우리 역사에서는 고려 때에야 본격적으로 조직화했다. 당시에는 거세 형벌이 없었으므로 궁중의 환관은 모두 어렸을 때 개에게 성기를 물려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충원됐다.

중국 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환관은 역사상 왕권을 쥐고 흔들며 부귀영화를 누린 경우도 많았다. 고려 충렬왕 때 최세연은 아내의 심한 질투 때문에 스스로 음경을 잘라 환관이 됐는데, 나중에 인사권까지 쥐어 정승 위에 군림하기도 했고, 원나라 환관으로 갔던 고용보는 충혜왕의 절을 받을 만큼 권세가 대단했다.

단종부터 연산군까지 4명의 임금을 모신 김처선은 연산군의 학정과 폐악을 보고 “늙은 놈이 네 임금을 섬겼고, 경서와 사서도 통했는데, 고금을 통틀어 상감과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꾸짖었다. 김처선은 팔, 다리, 허리, 혀가 차례로 잘려 숨이 끊어질 때까지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은 끔찍한 거세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전문적거세 기술자인 엄공(도자장)이 시술했다. 3일 동안 따뜻한 방안에 머물게 한 후 대소변이 나오지 않을 때쯤 낫 형태의 수술칼로 음경과 음낭을 단번에 잘라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에서 관리한 엄공에게 이 일을 맡겼는데, 엄공은 의원이나 도자공이 아니라 백정이 맡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2부에서는 궁녀의 삶과 역할, 행적을 다루고 있다. 왕조시대 유일한 여성공무원인 궁녀는 월봉을 곡식이나 돈으로 받았는데 많게는 쌀 6가마나 됐다고 한다. ‘인물과 사건으로 본 궁녀 이야기’에서는 궁녀와 연관된 주요 사건 및 궁녀 간통, 동성애 등에 대한 기록을 살폈다.

환관과 궁녀들이 비밀리에 관계를 맺다가 들통나거나, 궁녀끼리 동성연애를 즐기는 대식(大食)행위도 있었다. 원래 대식은 궁녀들이 가끔 가족이나 친지를 궁궐 안으로 불러 같이 밥을 먹는 것을 가리켰으나, 나중에는 이를 핑계 삼아 여중이나 과부들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조선의 마지막 궁중요리사인 조충희씨, 환관들의 족보인 ‘양세계보’, 궁인 처소에서 대거 쏟아져 나온 남근목과 구한말 상궁 사진 등도 모아놓았다. 어쩌면 인간으로서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주인공들의 흔적이자 역사이다. TV 사극에서는 빠지지 않는 등장인물이면서도 평범한 소품처럼 여겨지는 환관과 궁녀에 대한 웬만한 궁금증은 이 책에서 풀린다. 조선 의녀 이야기를 다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사극 ‘대장금’에 이어 환관이나 궁녀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도 나올 법하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