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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미네르바 성냥갑/움베르토 에코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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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미네르바 성냥갑/움베르토 에코 지음

입력
2004.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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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성냥갑움베르토 에코 지음ㆍ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발행 각 9,500원(1,2권)

쉴 새 없이 벌렁대는 개의 젖은 코는 측은하다. 시력이 시원찮은 탓에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과 교류하는 힘의 상당부분을 후각에 의존하다 보니, 개의 코는 늘 피로하다. 또 코로 얻는 정보라는 게 대개 먹이와 관련된 것이니, 정보분석의 결과는 으레 결핍의 고통이다. ‘개코’의 상징성이 ‘개’의 그것보다 대접 받는 까닭도 수긍이 간다. 외람되게도, 이름 앞에 수식을 달자면 원고지 한 페이지로도 모자란 움베르토 에코의 새 책 ‘미네르바 성냥갑’에서 연상된 단상이다.

에코는 전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으로 일상의 부조리들을 귀신(혹은 개코)처럼 까발리고, 풍자했다. ‘미네르바 성냥갑’은 권역을 넓혀 정치, 사회, 문화, 과학, 미디어 등을 종횡무진한 무용담의 제2탄인 셈이다. 그는 난 체하고 든 체하는 속물들의 우중충한 이면과 상식의 허술함, 타성으로서의 익숙함을 ‘세상의 바보…’보다 조금은 더 성난 어조로 비튼다.

그 중에는 이미 논쟁의 도마에 올라 싸구려 햄버거의 고깃덩어리처럼 다져진 것도 있다. 하지만 에코의 칼날은 그 모눈종이 같은 칼자국의 틈새를 비집고 든다. 그는 절대 한 번 때린 곳은 안 때린다. 가령 인간복제의 문제에는 종교ㆍ윤리적 잣대가 아닌 경영의 주판을 들이댄다. 완벽하게 복제된 히틀러라도 티베트 승려가 라사에서 교육시켜서는 그의 제3제국은 부활하지 못한다. 그래 놓고는 그는 이같은 과학적 공상이 순진한 유물론적 결정론이라며 “인간 복제는 누구에게나 최악의 투자”라고 말한다.

백악관 섹스게이트를 두고 그는 클린턴의 거짓말보다 ‘펠라티오는 섹스가 아닌 줄 알았다’는 억설에, 그 억설을 두고 논란을 빚는 ‘관대한’ 사회에 분개한다. 보편적인 악은 죄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이탈리아 정치인들과 그같은 방종적 논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그는 못 견딘다.

전문가들에게나 소용될 막강한 기능들을 덕지덕지 붙여 정작 필요한 프로그램의 실행속도만 떨어뜨리는 윈도즈3.1은 또 어떤가. 정보화사회의 대다수 소비자들은 과분한 기능들을 삭제하려고 안내잡지를 사야 한다. 예술창작활동에 대한 정부지원처럼 당위로 대접 받는 고정관념들에 대해서도 그는 웃으며 분노한다.

에코가 교수로 있는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직계 제자로, 책의 번역을 맡은 김운찬(47ㆍ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에코의 글쓰기와 관련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는 정형의 틀은 분노의 효과를 반감시키지 않겠느냐”고 했다. 고상한 욕, 현학적 저속함의 효용가치를 두둔한 말이다.

그런데 혹시, 개코처럼 불합리한 세상에 대해 피곤할 정도로 예민한 감각을 지닌 그 천재가 자신의 감각기제에 대한 보호막으로 웃음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참여지식인으로 분류된다는 그이지만, 머리띠 두른 에코의 모습은 그래서 아무래도 어색하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책의 제목은 이탈리아의 유명 종이성냥 브랜드로, 애연가인 그는 단상들을 성냥갑에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책에 실린 글들은 그렇게 모은 단상들을 다듬어 주간지 ‘레스프레소’에 연재했던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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