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이충걸 지음
디자인하우스 발행
나는 좀 ‘튀는’ 책들을 좋아하고, 또 모으기도 한다. 내가 이 책을 점 찍은 것도 여러가지 점에서 튀었기 때문이다. 우선, 표지와 장정이 눈에 쏙 들어왔다. 내가 좋아 하는 쑥개떡 같은 분위기의 표지. 현란한 원색 인쇄도 아니고, 눈을 어지럽히는 디자인도 아니다. 그저 두께가 3㎜ 정도 하는 두툼한 합지를 표지로 사용하고, 빛이 나는 먹으로 제목을 꾹 눌러만 주었다.
알몸 그대로의 합지가 당당하게 맨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합지는 옷으로 치자면 안감 정도에 해당된다. 근엄한 양장 책을 만들 때 쓰이는 합지는 겉감인 매끈한 종이나 고급 천 속에 갇혀서 좀체 그 형체를 볼 수 없다. 합지는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이다. 그런 엑스트라가 훌륭한 감독을 만나 운명적으로 발탁되어 주인공으로 맨 얼굴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런 생각을 한 사람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그가 책이 가지고 있는 정형성을 깨부수고 관련종사자들의 압력(공정이 까다롭거나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다)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본문 용지는 중질지다. 표지와 컨셉트가 잘 맞아떨어지고 반뜩이지 않아서 눈이 편하다. 너무 심심할까 봐 본문 내용 중에 제목과 도입 부분 등에 별색으로 힘을 주었다. 본문 그리드나 서체 환경 등도 속된 말로 ‘딱’이다. 책의 내용과 포장이 안성마춤인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푹 쉬고 싶다. 그냥 편하게 읽는 둥 마는 둥 마냥 읽는다. 정보를 얻기 위한 책 읽기는 힘겨운 노동이고,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책을 읽고 싶지 않다. 책을 핑계로 이 생각 저 생각 할 수 있다면 더 좋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너무 편하다. 마치 엄마 품속 같다.
내 엄마 이야기 같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대신 써 준 것 같기도 하고, 더 늦게 전에 엄마 이야기를 써 보라고 권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어떻고, 어디서 눈물이 났고, 어느 구절은 가슴에 못이 박히는 것 같았고…. 하는 식의 독후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진 속에서 아련히 기억해 볼 수 있는 엄마의 젊은시절을 상상해 보게 되었고,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얼마나 힘들게 살아 오셨는지를 절감하게 되었고, 엄마가 어떤 음식과 꽃을 좋아하시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고…. 불현듯 그 ‘어느 날’에 엄마에 관해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뿐으로도 나는 한참을 편하게 쉰 것이다.
/오창준ㆍ컬처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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