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통신 보도가 사실로 확인되면서 외교통상부는 치명상을 입게 됐다. 특히 AP측과 외교부 직원의 통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 외교부가 보인 행태는 은폐기도 의혹마저 낳고 있다.24일 오전 AP측이 김선일씨 피랍 당시 비디오테이프를 보도하면서 "이달 초 한국 외교부에 실종사실을 문의했지만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고 공개했을 때만 해도 외교부의 입장은 강경했다. 긴급회의 끝에 입장을 정한 외교부는 언론에 "자체조사를 시작했지만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같은 시간 AP측에는 "언제, 누가, 어떤 사항을 문의했는지 사실을 확인해달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설마 외교부 직원이 이라크에서 발생한 한국인 실종사실을 무시했겠느냐는 안이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자 이날 오후 3시 AP통신 뉴욕본사에서 반격을 가했다. AP측은 "지난 3일 서울지국 기자가 외교부 당국자에게 '김선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인이 이라크에서 실종된 사실을 아느냐'라고 질문했으나 '그런 사실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씨의 피랍사실을 추론할만한 사항이 모두 포함돼 있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오히려 강경해졌다. 외교부는 오후 5시께 "AP측은 외교부 누구와 통화를 했는지 밝혀야 한다"며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하게 몰아세웠다.
25일 오전 상황은 급반전했다. 외교부 직원 2명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기억이 있다는 진술이 나온 것. 그러나 외교부는 이 사실을 확인하고 감사원에 자료를 넘겼으면서도 오후 브리핑을 통해 다시 한 번 AP측에 사실규명을 촉구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외교부 관계자는 "조사협조차원에서 확인해 달라는 의미였다"고 해명했지만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외교부는 또 이날 오후 8시 전화를 받았다는 내용을 확인하면서도 '김선일'이라는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테이프 확보사실을 밝히지도 않은 채 외교부에 확인한 AP측에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지적한 것이다. 외교부는 또 자체적으로 AP측 보도를 확인하고도 감사원 발표형식을 빌려고 함으로써 자신들의 책임을 떠넘기려 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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