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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준비안된 협상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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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준비안된 협상의 결과

입력
2004.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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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좋은 말로 하자'는 것이다. 힘이나 다른 방식을 쓰지 않고, '좋은 말'로 서로에게 윈윈 전략이 되는 쪽을 찾아 보자는 것이다. 협상의 기본은 커뮤니케이션이다.그런데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협상에 상대적으로 약하다. 가정이나 직장, 학교에서 늘 권위주의적인 상하관계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속에서의 협상에 익숙하지 않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넘겨버리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우리는 너무 정확하게 똑 떨어지는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지 않다. 오히려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정확한 언어보다는 부정확한 비언어적 수단에 의존해서 '이렇게 해주겠지'라고 넘겨짚는 버릇이 있다.

우리는 문서로 하는 약속보다는 구두로 하는 약속에 더 익숙하다. "우리가 남이가"하는 마음도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방해한다. 약속은 깨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궤변도 있지만, 약속이라는 것이 늘 변경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조곤조곤 따져야 할 상황에서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따지다가 힘에 겨우면 "당신 몇 살이야?"가 튀어나온다.

그래서 '협상'이라는 단어 자체를 '야합'이나 '흥정'과 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다.

실제로 협상은 어렵다. 왜? 사람의 '마음'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괴물이다. 마음이 먼저 앞서가서 논리적인 상황 판단이 흐려질 때도 있다.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지금까지 쏟아 부은 정성과 시간, 노력이 아까워서 질질 끌려 갈 수도 있다.

나라 사이의 정상회담이나 외교 역시 모두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협상이다. 외교 협상에서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전략이 동원된다.

고(故) 김선일씨 사건에서 보여준 정부의 태도는 실패한 협상의 전형이다. 아직 정확한 진상이 드러나지 않아 여러 의혹이 일고 있고, 정부쪽에서는 협상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이해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

실패한 협상은 어떤 협상인가?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그냥 다 주는 것, 질질 끌려 다니며 시간만 오래 끄는 것, 그러다가 결론 없이 결렬되는 것이 실패한 협상이다. 아무 소득도 없이 협상이 결렬되고 상대방과의 관계만 악화되었다면 더 나쁘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서로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서 싫어하게 된다면 다음 번 협상 자체가 어려워진다.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협상에서 이긴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협상의 우위를 가진다. 수 틀리면 단호하게 'No'라고 거절하겠다는 마음으로 협상에 들어간 사람은 이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No'라고 말하고 걸어나올 옵션이 없는 사람은 협상의 옵션도 없다. 상대방의 요청에 끌려갈 뿐이다. 상대방이 협상에 응하지 않을 때 이 쪽에서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없을 경우는 협상의 '레버리지'가 없다. 대안이 없기 때문에 나쁜 상황에서 뒤돌아 서서 걸어 나오지 못한다면, 그 협상은 이미 지고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알 카포네가 "부드러운 말과 총을 동시에 쓰는 것이, 부드러운 말로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래서 협상에서 미리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적절한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그때 그때 상황이 돌아가는 변수에 따라서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지 않고, 상황이 닥쳐서야 허둥지둥한다면 이미 협상에서는 진 것이다. 돌출 악재가 있을 때 그 악재에 당황하기 바빠서는 협상을 할 수가 없다. 김선일 씨에 대한 정부의 매끄럽지 못한 대응도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지 않은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본다.

/강미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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