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엊그제 기분나쁜 기사를 하나 실었다. 이 신문 인터넷판은 김선일씨 사건으로 한국이 국제테러리즘이라는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게 됐다면서, 국제테러리즘을 겪지 못하고 살면서 역사적으로 '섬나라 세계관(insular worldview)'을 지녀 '은둔의 나라(hermit kingdom)'로 불렸던 나라가 지금 충격과 슬픔에 싸여 있다고 보도했다. '은둔의 나라' 이상이 되려면 자국민들이 외국에서 테러공격을 받을 개연성이 높아졌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 같기는 한데, 섬나라 세계관이니 은둔이니 하는 대목이 가시처럼 목에 걸린다.■ 그러나 이 지적대로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 주둔 연합군에 가담하는 데 따른 위험은 현실화했다. 김씨 사건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국제문제에서 더 큰 역할을 맡으려 하는 시도를 재점검하게 만들었고, 중동문제가 안방문제가 됐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사실 이 세계적 테러리즘의 와중에 안전한 나라나 국민은 없다. 재래적 전쟁과 구별되는 비대칭전쟁시대에는 비전투지역이 따로 없고 비전투원이라고 무사하지도 않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국제정보가 모자라고 자국민 보호노력이 놀라울 만큼 부실한 경우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기도 어렵다.
■ 그 동안 한국인들이 경험한 테러는 대부분 북한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북의 위협이 완전히 해소되지도 않은 터에 국제적 테러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김씨 사건 이후 응징보복을 주장하는 목소리나 적극적 파병론, 테러에 굴복하면 안 된다는 여론이 높아지는 것은 국제테러에 노출된 정도가 그만큼 커졌음을 반증하는 일이다. 경찰청은 김씨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서의 테러위험성도 높아졌다고 보고 대테러과를 신설하는 등 조직과 인력, 장비를 강화키로 했다고 한다.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일이므로 제대로 추진될지는 알 수 없다.
■ 23일 도라산전망대에서 서울대와 육군이 주최한 GOP(최전방 초소) 안보토론회에서는 경찰 외에 군의 역할이 강조됐다. 전통적 대외전쟁과 국내적 폭력을 구분하기 힘든 비대칭전쟁시대에 군은 전문영역만 고집해서는 안 되며 군사력과 경찰력에 관한 새 편제를 확립해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효과적 대응을 지향한다고 표방한 테러방지법안은 '인권침해를 보장하는 국정원 권한강화법'이라는 반대여론 때문에 표류하고 있는 지 오래다. 법 제정의 필요성 자체보다 운용문제가 논란의 초점이라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것 같다.
/임철순 논설위원실장 yc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