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찾아준 평생 잊을 수 없는 곳이다.한국일보와 나의 인연은 23년 전인 1981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육지에서 뱃길로 40여 분 걸리는 경남 통영시 용남면 어의도 어의초등 5학년이던 나는 뜀박질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항상 숨이 가빴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부산과 마산의 큰 병원을 오가며 검진을 받은 결과 선천성 심장병으로 '시한부 생명'이란 충격적인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고기잡이로 겨우 생계를 꾸려가던 집안 형편상 엄청난 수술비를 마련할 길이 막막했다.
이같은 나의 딱한 처지를 알고 초등학교 은사 류경두 선생님이 한국일보와 인연을 맺어줬다. 은사님 사위를 통해 소개를 받아 찾아간 곳은 한국일보 편집국이었다. 그곳에서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준 사람을 만났다. 당시 사회부에 근무하던 임철순(현 한국일보 논설위원실장) 기자였다.
임 기자의 인터뷰에 응했더니 바로 다음날 '섬마을의 꿈 꺼져간다'는 제목으로 사회면에 나에 관한 큼직한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대한 반응은 놀랄 정도였다. 익명의 불자가 500만 원을 선뜻 기탁하는 등 하루 만에 당시로서는 거액인 1,700만 원의 성금이 답지했다. 한양대병원에서는 섬마을까지 앰뷸런스를 보내 심장수술은 물론 처진 오른쪽 눈꺼풀을 바로 잡는 교정수술까지 무료로 해 주었다.
수술 후 고향 섬마을로 돌아갔던 나는 한달 뒤 다시 병원에 들러 첫 심장검진을 받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항상 숨이 가빠 헐떡여야 했던 내가 새 생명, 새 얼굴을 찾아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나의 생일은 일년에 두 번이다. 하나는 태어난 날(음력 9월 25일)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생명을 부여 받은 날(양력 6월 4일)이다.
한국일보는 나에 관한 기사를 계기로 '심장병 어린이를 돕자'는 캠페인성 시리즈를 연재했다. 3년 뒤 드디어 국내에도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한 새세대심장재단이 설립돼 많은 심장병 어린이들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이 모든 게 한국일보의 덕분이다.
어느덧 새로운 삶을 살아온 지도 20여 성상이 흘렀다. 나는 섬마을 부모 품을 떠나 창원의 경일고와 부산의 동아대(금속공학과), 대학원까지 졸업했으며 1996년 경남 양산의 자동차부품제조업체 가야에이엠에이(주)에 입사, 품질보증과장으로서 회사의 핵심분야를 맡고 있다. 2002년에는 결혼도 해 10개월 된 아들을 둔 어엿한 가장으로서 등산이나 테니스 등 과격한 운동도 즐기며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에 관한 기사를 써 줬던 임 기자와는 학창시절 매년 연하장과 책을 주고 받았고 요즘도 이메일을 통해 소식을 나누며 끈끈한 연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주변의 도움으로 삶이 연장된 만큼 나눔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있다. 그래서 성금보내기를 비롯해 조그만 성의나마 사회에 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어린이들이 선천성질환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보내준다면 그들도 더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일보를 비롯해 그동안 나에게 사랑과 격려를 보내준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나눔을 실천하며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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