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만 다 갚는 것을 보면 내일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다고 하시던 어머니께서 운명하신 지 벌써 26년이란 세월이 흘렀나 봅니다. 운명하시던 그날도 저희들은 여전히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했기에 눈을 감지 못하고 운명하신 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시려옵니다. 야속했던 가난을 핑계로 살아 생전에 효도 한번 해드리지 못했던 것이 그저 뼈저리게 가슴 아프고 죄스럽기만 합니다.어머니 운명하시기 20일 전 제 생일을 하루 앞두고 생일 떡을 하라고 하셨지요? 그러나 그때는 모내기를 끝내면서 식량이라곤 거의 떨어진 상태였어요. 제 생일이기도 하거니와 어머니께서 떡을 참 좋아하시는 걸 알면서도 어머니 말씀을 들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보름 동안 식음을 멀리하시며 병석에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이는 장례준비금을 또 빚 내러 가고 저 홀로 어머니를 지켜 봐드리고 있었지요. 어느 순간 어머니는 제 무릎에 기댄 채 두 눈을 훤히 뜨신 채로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를 쳐다보시며 운명하셨습니다.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운명하신 어머니를 부둥켜 안고 저는 한 없는 슬픔을 울음으로 토해 냈습니다.
이내 이웃친지 분들이 달려오셨고 그이도 어디서 어머니의 운명소식을 들었는지 신발을 벗어 들고 뛰어와서 싸늘해진 시신을 부둥켜 안고 몸부림을 쳤지만 하나뿐인 외아들의 부르짖음에도 어머니는 아무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눈물로 6개월을 보내고 저희들은 고향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홀로 계셔야 할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어머니 산소 앞에 큰절을 올리고 동구밖을 나설 때에 어디선가 '에미야'하고 부르시는 어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오매불망 자식 잘 되기만을 갈망하셨던 어머니, 부족한 며느리를 딸같이 예뻐해 주시던 어머니, 정말 그립습니다. 진정 보고 싶습니다. 이제 어머니 은혜로 빚 다 갚아내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생전에 돌봐 주시던 미향이와 오숙이는 훌륭한 남편 만나 결혼생활이 넉넉해 보입니다. 그때 젖꼭지 물고 있던 미영이도 머지 않아 결혼을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 드리고 싶은 말씀을 어찌 이 작은 지면에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이젠 두 눈 꼬옥 감으세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이차영·인천 남동구 구월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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