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가 납치된 뒤 참혹한 최후를 맞이할 때까지의 과정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남아 있다. 가장 큰 의문은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이 김씨 납치자들과 도대체 어떤 협상을 했는지에 모아진다. 일각에서는 김씨를 납치한 조직과 살해한 조직은 별개라는 주장도 나온다. 알 자지라 방송에 나와 '철군'을 요구한 반미항전단체라면 김 사장이 이들과 철군 여부를 놓고 협상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5월 31일∼6월 10일
김 사장은 주이라크 한국대사관과 현지 경찰에 전혀 알리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김씨의 행적을 추적했다고 한다. 3일 오후 실종을 확신했고 이후 현지인들로부터 무장단체에 의한 피랍 가능성도 전해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김 사장이 실종 이튿날인 1일과 7일, 미군 서비스업체인 AAFES측에 도움을 요청했던 10일 등 세 차례나 대사관을 방문한 사실을 감안하면 사건 초기부터 대사관측에 관련 사실을 털어놓았고 미군도 이를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론도 가능하다.
납치단체는 또 3일 이전에 김씨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한 뒤 이를 바그다드의 APTN에 보냈다. 그러나 납치범들은 이 테이프에 아무런 요구사항을 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미 김 사장에게 석방조건을 전달했고, 김씨가 무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테이프를 공개한 게 아니냐는 추론이 나온다.
11일∼16일
김 사장은 무장세력 고위층과 친분이 있는 현지인 변호사를 통해 피랍사실을 확인한 뒤 수차례 석방교섭을 벌였다고 진술했다. "무장세력은 대사관이나 경찰에 알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김씨가 곧 풀려날 것이다"는 변호사의 얘기도 소개했다. 11일에는 대사관을 한차례 더 방문했다.
하지만 철군을 요구한 무장단체라면 자신들의 요구가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꺼릴 이유가 없다. 또 석방가능성이 높아진 이유가 우리 군이 철수 요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일 리도 없다. 납치단체가 알 자르카위가 이끄는 '유일신과 성전'이었을 가능성이 크지 않으며, 설령 이 단체였더라도 당시의 요구조건은 금전적 대가 등 다른 반대급부 아니었겠느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김 사장은 그러나 진전을 보이던 협상에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긴 듯 16일 미군측과 직접 선이 닿아 있는 AAFES측과 다시 한번 접촉했다.
17일∼22일
김 사장은 20일 갑자기 모술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미군의 요청으로 석방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라고 했다가, "사업차 간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그가 방문 목적을 번복한 이유는 석연치 않다. 협상과정에서 액수 등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자 '유일신과 성전'이 새삼 철군 문제를 제기했거나 강도조직이 김씨의 신병을 '유일신과 성전'에 넘겼고, 이 때문에 김 사장이 모술을 방문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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