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 후반, 해마다 6월25일만 되면 반공 글짓기라는 것을 해야 했다. 숫기 좋고 말솜씨 반듯한 동무들은 반공 웅변대회라는 것에 나가기도 했다. 반공 글짓기든 반공 웅변이든, 그 요체는 증오를 실은 비장함이었다. 그리고 그 비장한 증오의 칼끝을 겨눠야 할 대상은 딱히 공산주의라는 알 수 없는 이데올로기라기보다, 휴전선 이북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면서 호시탐탐 남침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북괴'였다. 지척의 동족 국가에 대한 그 비장한 증오는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로 시작하는 노래에 실려 학교 전체로, 나라 전체로 퍼져나갔다.조금 머리통이 커지면서, 혹시 어려서 들은 반공-반북 선전들이 죄다 거짓말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남한의 군사독재 체제가 워낙 징그러웠던 터라, 혹시라도 북쪽에는 살 만한 사회가 들어서 있는 것 아닐까 하는 기대가 은근히 일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어지럽힌 그 반공-반북 선전들에 만만찮은 양의 진실이 들어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기까지 그리 긴 세월이 걸리지는 않았다. 실제로 북한 체제는 예나 지금이나 자본주의 이후 사회라기보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다. 경제 형편이 남한보다 나았다는 1970년대 초까지의 북한도, 시민적 자유라는 척도로 보면, 남한보다도 형편없는 체제였음이 분명하다.
분명히, 민족사에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낸 6·25 전쟁의 가장 큰 책임은 김일성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있다. 그리고 그들의 혈연적·이념적 후배들이 지금도 그 사회를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이젠 우리 쪽에서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체제로부터 민중을 또렷이 분리해내는 것이 북한 같은 전체주의 사회의 경우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남한은 모든 면에서 북한과 비교할 여지 없이 앞선 사회다. 너그러움은 힘센 쪽의 몫이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