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를 살해한 테러범들이 AP통신의 TV뉴스인 APTN에 김씨에 대한 심문내용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건넨 이유는 무엇일까.24일 공개된 이 테이프의 내용을 보면 테러범들의 의도와 납치된 이후 김씨의 심리상태의 일단을 유추할 수 있다.
테러범들이 APTN에 테이프를 넘긴 것은 선전전의 일환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짐작된다. 김씨가 심문과정에서 "부시는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등 미국에 대해 철저한 반감을 드러낸 것을 알려 자신들의 반미테러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다. 많은 언론사 중 미국 통신사를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테러범들은 지난달 말 김씨를 납치한 이후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피랍사실이 알려진 20일까지 납치와 관련한 구체적 요구사항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김씨를 처음부터 살해할 의도는 아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김씨의 목숨을 담보로 해 한국정부에 정치적 요구를 할 계산이었다면 3주 가까이 우리 정부에 아무런 통고 없이 그를 억류한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김씨가 일하던 가나무역을 통해 그 동안 협상이 몇 차례 오갔다는 정황으로 미뤄 이들의 요구조건이 처음에는 파병철회와 같은 민감한 것이 아니었을 수 있다. 그러나 협상이 만족스럽게 진행되지 않자 김씨를 살해할 명분을 찾기 위해 파병철회를 들고 나왔고, 이 과정에서 추가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정치적 대의명분으로 입장을 급선회했을 개연성이 있다.
김씨가 테러범들의 심문에서 미국을 강하게 비난하는 점도 눈에 띈다. 그는 "부시는 테러리스트" "아랍어를 배우기 위해 왔다"고 하는 등 자신이 반미의식을 갖고 있으며 아랍에 대해 호의적이란 점을 납치범들에게 주지시키려고 애를 썼다. 미군에게서 부당하게 불심검문을 받았다며 일어나서 벽에 손을 짚고 몸수색을 받는 자세를 해 보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에는 "수학교사를 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자신이 신학대를 나와 선교사를 꿈꾼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김씨가 미국에 강한 반감을 드러낸 것은 단지 살기 위한 제스처만은 아니었음을 그가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이메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5월 친구에게 보낸 3건의 이메일 중 발신일이 30일로 된 마지막 이메일에서 김씨는 "소름 끼치는 미군의 만행을 담은 사진을 갖고 가겠다. 미국인, 특히 부시와 럼스펠드, 미군의 만행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썼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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