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통신이 24일 김선일씨의 실종여부를 살해되기 20일 전에 외교부에 문의했다고 밝힘에 따라 정부의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김씨를 살릴 수도 있었다는 정황이 제시됐다.그러나 외교부는 강하게 반발하며 AP측의 문의를 받은 당국자의 이름 등 구체적인 증거를 대라고 반격에 나섰다. 이에 따라 외교부는 국가기관의 공신력을 걸고 세계적 통신사와 진실공방을 벌이는 형국이 됐다.
AP 서울지국 기자가 지난 3일 외교부 당국자에게 "김선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인이 이라크에서 실종된 사실을 아느냐"고 문의했다는 대목은 충격적이다. '이라크', '한국인', '김선일', '실종' 등 김씨의 피랍사실을 추론할 만한 내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국민 보호업무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할 외교부로선 직무유기는 물론 고의적 묵살 의혹까지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면할 수 없다. AP측의 주장대로 외교부 당국자가 제대로 확인도 않은 채 문의내용을 무시한 것으로 밝혀지면 명백한 직무유기가 된다.
당시는 추가파병을 앞두고 정부가 이라크 교민안전 확보책 마련에 부심하던 때였다. 더욱이 이라크 현지 교민은 공관원 등을 제외하면 57명밖에 되지 않고, 정부는 이들의 명단과 연락처, 이메일까지 확보한 상황이었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김씨 신원을 확인했다면 조기 석방교섭에 나서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게 외교부 안팎의 지적이다.
더욱 큰 문제는 외교부가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고도 고의로 묵살했을 경우다. 정부는 출범 이래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외교부도 이런 정황을 알기 때문에 AP측의 보도에 강력히 대응하고 있다. 이날 오전 AP측의 보도가 나오자 외교부는 초비상 속에서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한 뒤 관련부서인 공보관실, 아중동국, 재외국민영사국 등을 대상으로 확인에 들어갔다. 외교부는 오후 들어 일단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짓고, '누구와 통화했는지를 밝히라'며 AP측을 몰아세우고 있다. 정부의 공신력이 걸려 있는 문제인 만큼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그 위험한 이라크에서 한국인 이야기가 나오는 테이프를 확보하고도 진실을 밝히지 않는 AP측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며 "취재원 보호문제가 아닌 만큼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로 진실을 밝히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나서 제3의 중립기관인 감사원이 AP통신 보도 내용과 외교부 피랍사실 확인과정, 이라크 현지 공관의 대응 등에 대해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AP와의 진실게임공방과 상관없이 20여일간 김씨 피랍사살을 확인하지 못하고, 김씨의 피랍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갖가지 의혹까지 이라크 현지에서 제기되고 있는 터라 만신창이가 돼 책임론에 직면하게 됐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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