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회담 첫날부터 동결 대 상응조치와 관련한 북핵 해법안을 경쟁적으로 제안하면서 3차 6자회담이 이를 둘러싼 '대회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회담 둘째 날인 24일 참가국들은 연쇄적으로 양자접촉을 벌이며 탐색전을 겸한 기싸움을 벌였고 중국과 러시아 등은 핵심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을 채찍과 당근으로 견인했다.북한은 회담 시작 후 이날 처음으로 미국과 양자접촉을 갖고 미국이 내놓은 새로운 제안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3개월간의 준비기간이나 리비아식의 자진신고, 핵 시설 해외반출 등 까다로운 항목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드러나게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첫날 기조연설 직후 바로 양자접촉을 제안했으나 북한이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미루는 바람에 북미양자접촉은 이날로 미뤄졌다. 미국측 제안에 대해 본국에서 사안별로 가부가 결정된 훈령을 내렸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미국은 자국의 제안에 상당한 자신감을 피력하는 한편 북한의 동결안에 대해서는 날을 세웠다. 북한이 동결안을 설명하면서 고농축우라늄(HEU)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은 데 대해 미국측은 "HEU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absolutely convinced)'"며 강력한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스콧 맥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포괄적 비핵화'방안은 리비아식 모델로 북한이 신의있는 행동을 보이면 참가국들도 신의있게 응답할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중국과 러시아는 협상의 실질적 성과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 양국은 호흡이라도 맞춘 듯 이날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는 내용을 똑같이 담았다.
특히 러시아는 북한을 상대로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를 종용하는 한편 이에 따른 상응조치로 에너지 지원은 물론 한반도 투자를 통한 새로운 아시아―유럽 수송로 건설까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과 납치자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이번 회담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라던 일본은 기대에 못 미쳤다. 북미 접촉에 이어 북한과 회동에 나선 일본은 한국과 미국이 제안한 핵동결에 참여할지조차 확답을 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소식통은 "일본은 북한이 밝히는 동결의 범위를 보고 에너지 제공 참여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베이징=김정곤기자
kimjk@hk.co.kr
■드러나는 쟁점들
북핵6자회담 우리측 수석대표인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24일 "회담은 진화한다"며 실질적 진전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내비쳤다. 해결까지 먼 길이지만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북핵 회담은 양파껍질 벗기기나 산넘기와 비슷해 보인다. 벗기면 또 한 꺼풀이 나타나고 하나를 넘었다 싶으면 또 다른 산이다.
지난 두 차례의 회담에서 북미간 불신의 장벽만 확인시켜 주었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CVID)' 표현은 이번 회담에서 일단 사라졌다. 북한이 지난 실무그룹회의에서 사용반대를 강력하게 주장한 결과 미국이 "표현으로 굳이 상대방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며 양보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신 '포괄적 비핵화'(comprehensive de-nuclearization)라는 새로운 용어를 들고나왔다.
그러나 고농축우라늄(HEU)핵계획은 이번에도 회담장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북한은 첫날 기조연설에서 핵동결안을 밝히면서 HEU의 존재를 동결범위에 포함시키지 않은 반면 미국은 7쪽 분량의 새로운 제안에 동결의 대상으로 '플루토늄과 우라늄 무기'라는 표현을 적시했다. 앞으로 동결의 범위를 둘러싸고 양측의 심각한 대립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또 첫날 기조연설에서 북한과 미국이 공히 동결의 조건으로 제시한 국제핵사찰이 새로운 난제로 등장했다. 북한은 동결을 확인하는 절차로 사찰을 받는 데는 원칙적으로 합의했지만 사찰의 주체는 6개국의 합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6개국이 합의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용해 사찰과정에서 '형제국'의 도움을 받겠다는 의지로 풀이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북한이 탈퇴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즉각적인 복귀와 IAEA의 사찰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제안에 들어있는 중유지원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과 북한이 이를 동결의 조건과 서로 연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이 사찰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중유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고 북한도 관련국이 충분한 상응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동결을 재고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김정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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