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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빈소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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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빈소의 분노

입력
2004.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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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신문, TV에 나오는 양반들 죄다 왔네. 하지만 이제 무슨 소용이 있겠노."끝내 주검으로 돌아온 김선일씨의 분향소가 차려진 부산의료원에는 전날에 이어 24일에도 정부 고위 관료와 정치 거물들이 잇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23일 오후 각료 중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정부를 대표해서 내가 왔다는 것이 모든 걸 말해 주지 않느냐"고 애매모호한 말을 남긴 뒤 5분여만에 다소 짜증 섞인 표정으로 황급히 빈소를 떠났다.

이어 오후 6시께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빈소에 모습을 나타내자 유족들은 "정부는 도대체 뭐했냐"며 절규했다. 그러나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다. 아드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는 반 장관의 원론적인 답변에 유족들은 그만 방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 직후 반 장관이 조문을 위해 구두를 벗자 뒤따라온 외교부 직원이 그 구두를 분향소 안으로 들고 들어와 바닥에 내려 놓아 눈총을 사기도 했다. 반 장관은 분노로 가득찬 유족들과 100여명에 달하는 취재진의 질문 공세에 둘러 쌓였던 탓인지 20여분 동안 빈소를 지켜야 했다.

이에 앞서 신기남 의장과 김근태 상임고문, 총리직을 목전에 뒀다 고배를 마신 김혁규 의원 등 여당 의원 17명이 관광버스 편으로 빈소를 찾았다. 이에 질세라 한나라당 김형오 사무총장, 권철현 의원 등도 이들보다 한 발 빨리 빈소에 와 '선수 치기'에 성공했다.

이들의 경쟁적 빈소찾기를 '면피성 통과의례'로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다. 다만 관료와 정치인들의 민첩한 '사후대응'이 '사전대응'으로 보다 일찍 이뤄졌다면 목사를 꿈 꿨던 '아름다운 청년' 김선일을 우리는 다시 볼 수도 있었다는 회한이 앞섰다.

/김종한 사회2부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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