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광복 이후 한국전쟁 종전 때까지 한국 현대사의 중요 장면과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포착한 희귀 사진들이 23일 대거 공개됐다. 소설가 박도(59)씨는 올해 초 미국 메릴랜드주 칼리지파크의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에 소장된 한국전 기록 사진 수만 점을 열람한 뒤 이중 500장 가까이를 복사해와 사진집 '지울 수 없는 이미지―8·15해방에서 한국전쟁 종전까지'(눈빛 발행)를 냈다.
한국전 발발 54주년을 앞두고 공개된 이 자료들은 대부분 당시 미국 종군기자와 미군들이 찍은 흑백사진으로 NARA 4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수만 점의 한국전 사진 자료 중 일부이다.
사진을 검토한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는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의 한국전 관련 사진은 존재가 알려져 있었지만 실물을 이처럼 다량 공개하기는 처음"이라며 "북한 지역에서 촬영된 인민군이나 미군, 한국전쟁기 민간인과 포로의 모습 등 대부분의 사진이 보기 드문 자료들"이라고 말했다.
이 사진집은 1945―1949 미군과 유엔군 국방군과 인민군 전화에 휩싸인 한반도 학살 피란민과 전쟁고아 포로 정전회담과 휴전 등으로 나눠 광복 직후부터 10년 동안의 현대사 변화를 시간 순서대로 증언하고 있다. 1945년 9월9일 조선총독부에서 미 제24사단 사령관 하지 중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총독이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모습, 이날 오후 4시 총독부 광장에서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올라가는 장면 등 해방 직후의 역사적인 현장을 담은 사진들이 앞부분에 실려있다.
사진집에는 미군과 한국군,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 피란민과 포로, 학살피해자들의 모습과 전란의 처참한 풍경 등 한국전 시기 사진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김일성과 박헌영, 김구, 이승만, 장면, 백선엽, 아이젠하워와 맥아더 등 현대사를 주도한 국내외 정치가와 군인의 모습도 곳곳에 등장한다. 특히 한국전쟁 중 서울, 대전, 대구 등의 좌익사범들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처형하는 장면 등 집단 학살 사진들은 재미사학자 이도영씨가 제공한 것으로 이데올로기와 전쟁이 낳은 아픔을 비극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서울대 국사학과 정용욱 교수는 "한국전쟁을 전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잘 정리된 사진들"이라며 "미국이 공보(公報)의 목적으로 찍은 듯한 이런 사진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아 미국의 시각을 엿보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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