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파병을 1년 이상 준비해온 나라의 정부인가. 김선일씨가 결국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정부의 대책이 줄곧 겉돌았던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피랍 후 죽음이 확인된 23일 새벽 사이 정부는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했지만 김씨를 살릴 수 있는 정보와 판단력, 협상채널이 없었다. 충분히 예견되고, 예고됐던 납치테러사건인데도 사전에 준비한 대비책이 없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위기관리시스템을 준비하지 않았나. 오무전기 직원 2명이 피살된 것은 지난해 11월이고 한국인 선교단이 피랍된 것은 2개월 전이었다. 정부에는 제대로 된 위기관리계획(Contingency Plan)과 시나리오가 없었다. 추가파병계획이 확정된 후 한국인의 안전 위협은 더욱 높아진 만큼, 이번 같은 상황을 가정해 미리 이라크 전반을 아우르는 고위급 협상채널을 확보하는 것 등의 대책은 상식에 속했다.
이 때문에 고위급협상단을 현지에 급파했지만, 제대로 된 교섭창구조차 찾지 못했다. '아랍통'이 아닌 '미국통'이 대부분인 협상단을 구성한 것도 처음부터 잘못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라크 현지 대사관에 근무하는 인원은 임홍재 대사를 포함해 9명에 불과하고, 이라크 내 고위 이슬람성직자나 부족장을 움직일 수 있는 결정적인 영향력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도 모으지 않았나
정보부재상태에서 우왕좌왕했다는 정황도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23일 한나라당을 방문, "김씨 피랍이 알려진 이후 48시간 동안 김씨를 납치한 테러단체가 어디에 있는, 어떤 단체인지도 몰랐다"고 토로했다.
다른 정부 관계자도 "이런저런 피랍관련 정보들이 쏟아졌지만 진위를 판단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정보 채널을 미리 확보하지 않고, 지식을 축적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정보를 모아도 잘 될 수가 없었다. 급기야 언론보도를 유일한 판단기준으로 대통령에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보고하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섣부른 "파병불변" 고수
정부는 김씨 피랍사실이 확인된 직후 첫 공식입장으로 "이라크 파병원칙은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라크 파병은 이라크인들에게 적대적 행동을 하기 위한 게 아니라 평화와 재건을 돕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 일본인 피랍사건 당시, 일본정부가 납치단체의 파병철회요구를 정면거절했지만 이후 교섭을 거쳐 1주일만에 풀려난 사례를 참조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파병원칙 불변'이라는 정부 입장이 알 자지라 방송 등을 통해 아랍권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한국은 미국 영국에 이어 3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국가로 이미 이라크에 알려진 상태였다. 한 외교문제 전문가는 "결과론이지만, 정부가 내부적으로 파병원칙을 고수하더라도 공개천명은 미루고 무장단체와의 교섭여지를 남겼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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