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망받던 벤처기업가 2명이 회사 자금 수십억원을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등을 사칭한 이른바 '구권화폐' 사기단에 투자했다가 고스란히 날렸다.명문대 공학도 출신의 환경기술 벤처기업 H사 대표 강모(32)씨 등 2명이 유모(42)씨 등 5명의 사기단을 만난 것은 지난해 1월.
토양분석기 등을 개발해 한때 전경련의 '바이오벤처 최우수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던 강씨였지만 자금난에 허덕이다 손쉽게 돈을 불릴 욕심에 사채시장을 기웃거린 게 화근이었다.
이들에게 접근한 유씨 등은 각각 CIA요원, 전직 군 정보요원, 미 연방준비이사회(FRB) 직원 등으로 자신을 소개한 뒤 수차례에 걸쳐 "나는 한국 내 지하 음성자금을 양성화시키는 CIA비밀요원" "1달러 지폐 중 일련번호가 33, 66, 99번으로 된 것은 한 장에 100만달러 가치가 있다" 등 그럴듯한 말로 연막을 피웠다.
강씨 등이 보는 앞에서 가짜 FRB 직원에게 미연방채권 구입대금으로 12억원을 지급하기도 했고 "전직 대통령의 통치자금"이라거나 "전 정권이 모 장군에게 준 채권"이라며 사연이 있는 돈인 양 사실을 꾸며댔다.
이들에게 속아 강씨 등이 건넨 회사자금은 모두 46억5,000만원.
사기단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 지난해 1∼8월 사이 구권화폐 교환 수익금 명목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액면 100만달러, 10만달러 짜리 위폐 1억2,000만달러어치와 수 천억 원 상당의 위조 수표 및 채권을 지급했지만 모두 '휴지조각'이었다.
강씨 등은 "'비자금으로 숨겨둔 구권화폐를 신권으로 바꾸면 큰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풍문에 투자를 시작했지만 주변 금융권 인사들도 확실히 '아니다'고 하는 사람이 없어 끝까지 사기꾼의 말을 믿었다"고 고개를 떨궜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성영훈 부장검사)는 23일 이미 다른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유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기) 혐의로 추가 기소하고 공범 조모씨를 구속 기소했다. 또 달아난 일당 3명을 지명 수배했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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