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밤 서울 외교통상부 상황실에서 있었던 일이 두고두고 말을 낳고 있다. 이날 밤 10시가 조금 지난 시각, 노무현 대통령이 불시에 외교부 청사 11층을 찾았다. 노 대통령은 대책회의를 가지려던 외교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자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왔다"고 말했다. 최영진 차관은 즉각 "현지 언론보도도 그렇고 현지 공관과 연락을 취해본 결과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보고했다.하지만 불과 20여분 뒤 이라크 주둔 미군 당국은 바그다드에서 팔루자 방향으로 35㎞ 떨어진 지점에서 김선일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미군측 군의관은 김씨가 살해된 지 14시간 가까이 지난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가 '희망'을 얘기하던 바로 그 시간에 김씨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길거리에 내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서울의 분위기는 달랐다. 노 대통령은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에게 "피곤해 보인다"며 위로했고, 상황실 근무자들에게도 "교대들은 하느냐. 잠은 어떻게 잤느냐"고 물은 뒤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노고를 치하했다. 반 장관은 "오늘 저녁 알 자지라 TV와 특별회견을 갖고 김씨의 조기 석방을 호소했고, 특히 우리의 파병 목적이 재건과 인도적 지원이라는 점도 강조했다"고 보고했다.
납치 무장단체는 김씨의 생명을 담보로 철군을 요구했는데 정부는 이날 오후 7시 25분께 "무장단체가 요구시한을 연장했다"는 알 아라비야 방송 보도만 믿고 있었던 것이다. 최 차관은 23일 오전 당·정·청 대책회의에서 열린우리당 문학진 의원이 "한때 낙관적 기대를 갖게 했는데 정부는 어떤 정보로 어떤 분석을 한 것이냐"고 질책하자 "알 아라비야 방송 내용을 로이터와 AP통신이 타전해 분위기가 반전된 것으로 판단했다. 정부로서는 정보의 범위가 너무 넓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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