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병 안영규… 안상병!"이름이 불렸을 때 나는 알았어야 했다. 내가 무엇을 보게 될지를. 매복 수색 정찰이 일상이 되고, 전날 밤 옆에서 잠자던 동료가 시체가 되어 헬리콥터로 실려가는 꼴을 보고, 어쩌면 내 사지가 잘려서 병원선에 실리게 될 지도 모르는 전쟁터. 내가, 우리가 그 때껏 보아왔던 전쟁은 앞면일 뿐이었다.
지옥은 우리가 지어낸 물건들이 광란하는 축제이다.
나는 때때로 악몽을 꾼다. 나는 스물 몇 살이고, 베트남 다낭의 도끄랍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전투부대에 있다가 합동수사대 한국군 파견대의 시장조사원으로 옮긴 지 6개월이 넘었다. 나는 거기서' 큰 함석창고 안의 디즈니랜드'를 보았다. "PX는 바나나와 한 줌의 쌀만 있으면 오순도순 살아가는 아시아의 더러운 슬로프 헤드들에게 문명을 가르친다. 아메리카의 재화에 손 댄 자는 유 에스 밀리터리의 낙인을 뇌리에 찍는다. PX는 나무로 만든 말[馬]이다. 또한 아메리카의 가장 강력한 신형무기이다."
트로이의 목마. 미군의 PX는 쥐기만 해도 피부가 하얘질 것 같은 우유빛 비누와,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코카콜라와, 향수와 무지개색 과자와 달콤한 드롭스를 베트남에 쏟아 부었다. 베트남 사람들의 간소한 식탁 위에 치즈가 올라갔고, 소녀들의 가랑이 사이에서 콘돔이 빠져 나왔다. 다낭에서 나는 무장헬기와 소총과 동료들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는 대신 소곤거리는 실랑이와 낮은 웃음소리를 들었다. 나는 담배와 양주와 달러가 오가는 암시장 한가운데 있었다.
"'무기의 그늘' 아래서 번성한 핏빛 곰팡이 꽃."
거기서 전쟁을 보았다. 암시장은 미국의 통제와 관리에 따라 움직이는 곳이었다. 거기에는 남아도는 미국의 가공품을 대량 유통시켜 베트남 경제를 붕괴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전쟁이란 죽고 죽이는 싸움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앞면에 살육이, 뒷면에 사기꾼의 웃음이 그려진 동전이다. "달러는 세계의 돈이며, 지배의 도구다. 그것은 제국주의 질서의 선도자이며, 조직가로서의 아메리카의 신분증이다. 전세계에 광범하게 펼쳐진 군대와 정치적 힘 보태기, 지불과 신용과 예금의 중요한 국제적 매개체로 정착된 달러 보태기 등의 결합 위에 핏빛 꽃은 피어난다."
'무기의 그늘' 아래 자라나는 핏빛 꽃. 그 꽃을 움켜쥐려고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들을 만났다. 오혜정은 잡초 같았다. 미군 셋과 동거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그녀에게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달러 뿐이었다. 작은 술집 차릴 만한 달러를 품에 안고 홍콩으로 간 그 여자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그리고 30여년이 지난 지금 어떤 모습일지, 나는 때로 궁금해진다. 달러가 이 세상을 움직이는 한 그녀는 지금도 그 믿음을 굳게 지켜나갈 것이다.
혜정의 남편이었던 팜 꾸엔을 생각한다. 젊었을 적 학생운동을 했던 그는 전향해 베트남 정부군의 소령이 됐다. 왜 이 싸움을 해야 하는지, 자신이 서 있는 쪽은 어떤 신념 위에 있는지 팜 꾸엔은 한번도 회의하지 않았다. 다낭 항구로 들어오는 군수물자를 수사해 거액의 달러를 챙겨왔지만, 그 달러로 사랑하는 여인 혜정과 탈출하는 것을 꿈꿨던 사람이기도 했다. 상부의 실수를 홀로 뒤집어쓰는 순간, 전쟁이 그전까지의 삶의 가치를 모두 다 바꾼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을까.
내 손으로 죽인 청년 팜 민의 얘기를 뒤늦게 전해 들었다. 의사를 꿈꾸었던 청년은 민족해방전선의 전사가 됐다. 연인 소안의 약혼 소식에 절망했던 그는 "사랑과 혁명은 같은 길"이라는 지도자의 얘기를 듣는다. 베트남 정부군인 형을 속이고 위장 전향해 무기유출을 감행했던 그. 팜 민의 죽음이야말로 사랑과 혁명이 일치됐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알았던 그 어느 얼굴과도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다.
나는 눈을 뜬다. 전쟁은 이제 끝났다고 스스로를 달랜다. 과연 그럴까. 세기가 바뀌었지만 '베트남' 자리에는 아프가니스탄이 있었고, 지금 이라크가 있다. '무기의 그늘'은 아직 걷히지 않았다. 남의 전쟁에 끼어 들어, 달러의 냄새가 풍기는 추악한 이면을 목도해야 하는 고통은 이라크 파병을 앞둔 우리의 현재 진행형이다. 눈을 감으면 오래 전 기억, 눈을 뜨면 그때와 다르지 않은 현실과 마주한다. 내가 떠나왔던 베트남 거리를 나는 어디에서나 본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그때 한국일보에는
'무기의 그늘'은 암시장이라는 독특한 상황 설정을 통해 베트남전쟁의 실상을 객관적 시각으로 조명한 값진 성과로 꼽힌다. 황석영(61)씨는 1967년 다낭 합동수사대의 시장조사원으로 전쟁에 참가했던 경험을 토대로 이 소설을 썼다.
첫 권이 나온 85년 한국일보 9월3일자는 '흔히 수렁으로 비유되었던 월남전에 대해 작가는 삶과 도덕을 타락시키는 전쟁의 윤리성 문제 뿐 아니라, 전쟁의 역사성과 한국·미국·월남 등 3국 관계까지 조명하고 있다. 무기로 상징되는 강대국의 그늘 아래서 좌우 이데올로기로 나눠진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팜민형제들과 사소한 한국군인의 부정(不正)은 그의 생명수당 임을 강변하며, 미국원조물자의 부정거래의 현장에 뛰어든 제3국 군인 안영규 상병은 수렁의 각 단면을 대표하는 인물이다'라고 평가했다.
■한국문학과 베트남
우리 작가들이 베트남전을 소설화하는 작업은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77년 나온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전쟁 중 삶이 망가지는 인간의 고통을 그린 소설이다.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출세작이 된 이 소설은 베트남 전쟁을 본격적인 소재와 공간으로 도입한 작품으로 꼽힌다.
황석영은 1970년대 베트남전의 상처와 자기반성을 다룬 단편 '탑' '낙타누깔' '몰개월의 새' 등을 꾸준하게 발표한 뒤, 장편 '무기의 그늘'을 집필했다.
안정효의 장편소설 '하얀 전쟁'은 미국에서 번역·출간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주목을 받았다. 안씨의 등단작품이기도 한 이 소설은 83년 중편으로 발표한 뒤, 3권 분량의 장편으로 개작했다. 정훈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작가가 당시 전쟁경험을 충실하게 기록해 놓은 것이 귀중한 재료가 됐다. 베트남전쟁을 심각하지 않게 생각했던 주인공 한기주 병장이 동료들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전쟁의 참극을 알게 되는 '하얀 전쟁'이 초점을 맞춘 또 하나의 주제는 전쟁의 후유증이다. 귀국한 뒤에도 베트남 전쟁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면서,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삶은 전쟁이 얼마나 오랫동안 인간의 삶을 괴롭히는지를 고발한다.
이원규의 87년 장편 '훈장과 굴레'는 명분없는 전쟁에 참가한 박성우 소위의 후회와 자각을 그렸다. 동료들이 전쟁의 돈과 명예에 집착하다가 죽어가고, 사랑했던 베트남 여성이 한국 군인과 비밀리에 가깝게 지냈다는 이유로 몰살을 당하는 등 고통을 겪은 그는 자신이 전쟁의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상문이 89년 낸 '황색인'은 베트남 전쟁 중 군수품 유출과정에 몸담은 주인공이 역사의 모순과 미국의 제국주의적 면모 등을 차례차례 알아나가는 소설이다. 특히 베트남 민족의 독립운동, 한국과 베트남의 동질성 등을 조명해 새로운 시각으로 베트남전쟁을 짚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대환은 2001년 장편 '슬로우 불릿'에서 베트남전쟁 후 고엽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베트남전쟁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우리의 상처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음을 알리는 작품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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