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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전설'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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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전설'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展

입력
2004.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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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전설’이란 말이 문자 그대로 딱 들어맞는 인물이 프랑스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96)이다.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점령ㆍ파리 해방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던 그는 47년 사진전문가집단 ‘매그넘’을 창립하고 70년대까지 보도사진가로 세계 전역을 누볐다. 52년 출간된 그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은 제목 자체가 20세기 사진의 철학이었고, 거기 담긴 사진들은 사진을 비로소 예술로 끌어올린 미학이었다.사진전문화랑인 갤러리 뤼미에르가 25일 개막하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_결정적 순간’ 전에 그의 사진미학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13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대상 자체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생의 한 순간을 포착한 작품들, 유명인들을 담은 대표적인 초상사진들로 구성됐다.

비 온 뒤 물 고인 웅덩이를 막 뛰어넘으려는 한 남자의 모습을 포착한 ‘생 라자르 역 뒤에서’(1938년)는 널리 알려진 그의 결정적 순간 미학의 대표적 작품이다. 공중에 떠 있는 한 남자와 그의 그림자가 물에 비친 모습을 남자가 물에 빠지기 1,000분의 1초쯤 직전 포착한 사진이다. 하지만 이 사진에서 더욱 더 결정적인 것은 이 남자의 모습과 뒷배경 생 라자르 역 담벼락에 붙은 서커스단 포스터의 댄서들의 동작이 일치한다는 점이다.

브레송이 포착한 결정적 순간들은 이처럼 우리가 주변에서 인식하지 못하거나, 놓쳐버리는 일상생활의 유머와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파첼리 추기경을 둘러싼 관중들의 존경심 가득한 시선이 드러난 ‘몽마르트로 가는 파첼리 추기경’(1938년)이나, 포도주 병을 양 옆구리에 꼭 끼고 골목 모퉁이를 돌아오는 소년의 모습을 담은 ‘무프타르 거리’(1952년), 천막의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는 공짜 구경꾼의 모습을 포착한 ‘브뤼셀, 벨기에’(1932년) 등이 그렇다.

한편 브레송의 초상사진은 대상과 관찰자 사이에 어떠한 개입의 여지도 없는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장면을 보여준다. 대상 인물의 본질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하기 때문에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들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장 폴 사르트르, 작가’(1946년)는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한 남자와 대화 도중 파이프를 물고 생각에 잠긴 사르트르의 모습을 포착한 이 사진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구구한 설명 없이 전해주는 듯하다. 작업실을 막 나서 비 내리는 도로를 외투를 뒤집어쓰고 걸어가는 스위스의 조각가ㆍ화가 알프레드 자코메티를 담은 또 다른 유명한 작품도 함께 나온다.

브레송은 평생 소형 라이카 카메라만 고집했다. 사람의 눈높이에서,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과 만나기 위해 표준 렌즈만을 사용했다. 그는 또한 결코 플래시를 쓰지 않고 자연광선, 찰나의 빛 아래서만 사진을 찍었다. 촬영 당시의 느낌과 달라지는 어떠한 사진의 변형이나 왜곡, 조작을 용인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이 오늘날 디지털 사진의 만연 아래 정통 아날로그 사진 예술의 참 맛을 보게 해주는 이유다.

올해 96세로, 한 세기를 사진으로 풍미한 브레송은 함께 매그넘을 설립했던 친구 데이빗 시모어가 취재도중 살해되자 사진에서 멀어져 66년에는 매그넘과도 결별했고, 74년 이후에는 그림에만 전념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8월 6일까지 열리는 전시에는 화가 마티스가 손수 장정을 제작해준 ‘결정적 순간’의 희귀본과 브레송 관련서적 등도 함께 나온다. 문의 (02)517-2134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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