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 소식이 전해진 23일 서울 한남동의 이슬람 사원에는 흥분한 일부 시민들의 협박전화가 수시로 걸려왔다. "사원을 폭파하겠다", "이슬람인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위협에 이슬람 신도들은 우려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삼엄한 경계에 들어갔다.인터넷 게시판에는 분노에 찬 네티즌들의 항의성 글이 폭주했다. 많은 이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기력을 비판하며 김씨를 살해한 테러범들을 향해 거센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러나 일부 네티즌의 분노는 도를 넘어 엉뚱한 방향으로 치달았다. 테러범들에 대한 응징과 보복을 주문하는가 하면 이라크 국민 전체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간 파병 철회 주장이 주종을 이뤘던 국방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이라크에 전쟁선포를 하라", "정예특수부대를 보내 이라크를 싹쓸이하라", "이라크에 있는 풀 한 포기까지 모두 없애라"는 거친 발언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테러범들에게 김씨가 당한 그대로 복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나마 온건한 편이었다.
외교통상부 사이트는 네티즌의 항의성 접속이 폭주해 오전 한때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무고한 시민의 처참한 죽음 앞에서 네티즌들의 이 같은 분노는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인륜을 소중히 하는 우리 민족의 기질이 끔찍한 이번 비극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테러에 대한 분노와 무차별적인 증오는 구분돼야 한다. 죄없는 민간인의 목숨을 자신들의 정치적 도구로 사용한 잔혹한 테러범들과 똑 같이 행동할 수는 없지 않은가. 테러에 분노하되 성숙하고 이성적인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다.
/진성훈 사회1부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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