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정문에서 미술학원이 늘어선 신촌쪽으로 100m 정도 걸어가다 보면 나오는 의류 매장 ‘쌤쌤쌈지’의 한 귀퉁이에서 이색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입구에는 눈이 똥그란 블라이스 인형이 야릇하게 노려 보는 듯한 포스터가 손님들을 맞고 있고, 전시장 안에는 손바닥만한 인형옷 150여 벌이 오밀조밀하게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13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열리고 있는 이 전시의 제목은 ‘i-新소공녀展’. 다름 아닌 인형옷 전시회다.이 전시를 준비한 이는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의류브랜드 기비, 오브제 등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던 윤혜진(28)씨. 몇 년 전부터 20, 30대 여성 사이에서 블라이스 인형, 구체관절 인형, 비스크 인형 수집이 새로운 취미로 떠올랐고, 인형을 소재로 한 영화 ‘인형사’가 제작되는 등 이제 인형은 아이들만의 장난감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기성복 디자이너가 여는 인형옷 전시회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그가 만든 의상은 모두 블라이스 인형을 위한 옷이다. 블라이스 인형은 1972년 한 미국의 완구회사에서 한때 제작됐던 것으로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지나 개런이라는 미국의 사진 작가가 이 인형을 주제로 한 사진집 'This is Blythe' 을 발표하면서 다시 인기를 끌었다. 2001년부터는 일본의 완구회사 타카라에서 만들고 있다.
“어렸을 때는 바비 인형처럼 서구형 미인 모양의 인형을 좋아했어요. 다 커서 만난 이 블라이스 인형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어요. 첫인상이 못난이 같기도 하고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큰 것이 기이하지만 웃는 것도 같고, 뾰로통하게 삐진 것도 같고, 성숙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전시회 개막일인 13일에는 지나 개런이 전시장을 직접 찾기도 했다. 빨간 치마, 꽃무늬 원피스, 두툼한 코트 등은 어른 옷을 축소한 듯 현실감이 있다. 또 알록달록하게 만든 세심한 레이스를 구경하다 보면 동화 속 세상에 빠진 듯하다.
결혼한 지 1년 됐다는 그녀는 “저도 언젠가는 아이를 낳겠지만 그 때까지는 인형 데리고 노는 재미에 여념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윤씨는 앞으로 팝스타 마돈나, 60년대 톱모델 트위기처럼, 한 시대의 패션과 문화를 주름잡은 우상들의 옷을 주제로 한 작은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최지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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