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열사의 영정은 우리의 아프고도 아름다운 '6월의 기억'입니다. 그런 우리 모두의 소중한 자산이 훼손되다니 울분을 금할 수 없습니다."21일 연세대 총학생회를 찾은 민중 미술가이자 환경운동가 최병수(44)씨는 말문을 잇지 못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사망한 연세대 이한열씨의 장례식을 앞두고 동료들과 며칠밤을 새가며 완성한 이씨의 대형 영정(가로 2m 세로 3m)이 군데군데 칼자국이 난 채 심하게 훼손돼 있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그 당시 민주화를 위한 열망이 전국에 들끓었고 그 정점에 이한열 열사가 있었다"며 "그런 국민의 염원이 담긴 이한열 열사의 영정이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내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다"고 말했다.
이씨의 영정은 연세대 총학생회에서 보관하면서 매년 6월 교내에서 열리는 이한열 추모제 때에만 중앙도서관 정문에 걸어놓곤 했다. 올해에도 지난 9일 추모제 행사를 치르면서 영정을 같은 자리에 걸어놓았는데 다음날 아침 심하게 훼손된 채 발견된 것. 이에 연세대 총학생회측은 최씨에게 영정을 다시 그려달라는 부탁을 했고 최씨는 흔쾌히 수락했다.
2000년부터 전북 부안 새만금 평지마을에서 그림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최씨는 이한열추모사업회 측과의 협의가 끝나는 대로 영정 재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최씨는 "영정훼손도 가슴 아프지만 학생들이 이를 두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기말고사 기간에 통행에 지장을 주고 소음만 내는 추모제는 짜증만 난다', '영정훼손은 한총련의 자작극'이라는 등의 비난성 글들을 띄우고 있는 게 더 가슴 아프다"며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해도 학생들이 민주화를 위해 죽어간 선배 열사에게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비통한 심정이다"고 말했다.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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