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주둔 미군이 16∼17일께 김선일씨의 피랍 사실을 미리 알고서도 18일로 예정된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파병 방침 확정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일부러 이를 우리정부에게 통보해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같은 의혹의 발단은 21일에 있은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의 이라크 현지 발언에서 비롯된다.김 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씨는 오래 전부터 팔루자에 있는 미군 리지웨이 기지에 파견근무중이었다"며 "4∼5일 전 미군측으로부터 김씨가 KBR 직원들과 함께 바그다드로 떠난 뒤 소식이 없다는 통보를 받고 실종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또 20일 미군측의 요청에 따라 모술에 가서 납치사건에 대한 대책을 협의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미군 당국이 김씨의 피랍 사실을 확인한 뒤 한국 정부에는 알리지 않은 채 김 사장에게만 통보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김 사장의 언급에서 김씨의 피랍 시점이 16∼17일이고, 한국 정부가 이라크 추가파병 계획을 확정·발표한 날이 18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군 당국의 은폐 의혹은 더욱 짙어진다.
피랍 직후 한국인 납치 사실과 참수 위협이 알려졌더라면 추가파병에 대한 반대여론과 여당 내의 반발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의 추가파병 계획 결정은 연기되거나 무산될 가능성이 적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국인이 참수 위협을 받고 있는데도 미국 정부가 이를 한국 정부에 알리지 않은 채 추가파병 결정만을 이끌어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외교부는 그러나 22일에도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정부는 21일 새벽 주카타르 대사의 보고를 통해 김씨의 피랍 소식을 처음 접했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뒤 "김천호 사장의 발언은 엇갈리는 부분이 있어 확인이 필요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일각에서는 미군 당국의 은폐 때문에 결과적으로 김씨의 신변이 위협받게 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김 사장은 인터뷰에서 "납치단체의 상부조직과 접촉해 김씨의 안전을 보장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를 납치한 무장단체는 20일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김씨에 대한 참수 위협을 경고했고, 이는 18일에 한국군의 추가파병 계획이 확정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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