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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이라크파병, 지금부터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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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이라크파병, 지금부터 할 일

입력
2004.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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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그저께 밤은 이 땅의 누구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이라크에서 게릴라단체 '유일신과 성전'에 납치돼 참수 위협을 받고 있는 김선일씨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가 그저 살아만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았다.그러나 같은 순간, 이라크 추가 파병과 관련해서만큼은 저마다 생각이 달랐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젊은 생명들을 담보로 하는 파병은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는 체념부터 3,000명이 아니라 사단 병력을 보내서라도 앞으로는 그 누구도 한국인을 건드릴 수 없도록 보복해야 한다는 분노까지 갖가지 생각이 우리를 들볶았다. 파병을 둘러싼 공방이 시작된 1년 반 전부터 내내 우려했던 일이 눈앞에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자이툰 부대가 현지에 가면 이보다 더한 일도 일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아예 두려움으로도 바뀌고 있다. 그러나 33년을 바르게 살아온 한국인 청년의 무사귀환만을 기원하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지금, 몇 가지 사실만큼은 냉정하게 짚어봐야 한다.

첫째, 이 순간 파병 결정을 철회한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문제의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라크 지식인들의 말을 들어봐도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개입을 배제하고 민간 차원의 재건지원이란 대단히 비현실적인 환상이다. 외국군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이라크에는 주도권을 잡겠다는 민족 및 종교세력 간에 유혈 내전이 끝없이 전개될 것이다. 세계 분쟁 양상을 들여다보면 내전의 현장에서 가장 많이 스러져가는 것은 평화론자들이 최우선 보호 대상자로 여기는 어린이와 노약자들이다.

둘째, 자이툰 부대 파병은 미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국가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전쟁 이전부터 지원을 아끼지 않은 동맹국들에 대해 기대했던 것보다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영국, 호주, 폴란드, 일본 등 지원국들 입장에서 볼 때 파병의 대가는 커야 했다. 최근의 포로 학대 파문을 계기로 반미·반전 목소리는 커져 가고만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과감히 이라크에서 철수하고 미국에 등을 돌리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 우방임을 재확인했다는 사실 하나만도 국익과 연계되기 때문이다.

영국은 미국의 주니어로서 유럽연합(EU)의 주도국이기를 원한다.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 간 완충국으로서 미국과의 전략적 유대가 절실하다. 호주는 인접한 아시아 소국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주니어이기를 원한다. 그런데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과의 유대가 더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

마지막으로 자이툰 부대는 전후 안정 회복과 재건을 도우러 이라크에 간다는 사실이다. 남부 나시리야에서 서희·제마부대의 현지 활동은 이라크 전역에 널리 알려져 있다. 추가 파병되는 자이툰 부대의 임무와 역할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규모 있는 조직과 확보된 예산으로 재건 구호 활동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가을 서희 부대를 방문하고 돌아온 분들로부터 필자가 들은 것은 이라크인들이 해달라는 일은 너무나 많은데 손도 돈도 턱없이 모자란다는 아쉬움이었다.

지금 김선일씨의 구명을 위해 각계각층에서는 결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생각들을 내놓고 있다.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열되어 있고 아랍계와 쿠르드계로 나뉘어 있는 이라크인들을 이해하고 이슬람 문화에 좀더 다가가는 지름길들을 소개하고 있다.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슬기로운 아이디어들 중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귀담아 듣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2의, 제3의 김선일씨가 생겨나는 것을 미리 막아내는 일일 것이다.

/전홍찬 부산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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