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찰스 캠벨 미8군 사령관은 주한미군을 '동북아 지역군'으로 규정하면서 어느 곳이든 투입할 수 있다고 언급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실 그의 발언은 한미동맹이 한중관계와 상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미래의 중국-대만간 양안(兩岸)분쟁에 주한미군이 투입되기라도 하면 중국의 반응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참여정부가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몰린 듯하다. 경제·정치·외교 모든 분야에서 막강 파워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반세기 동맹인 미국 사이에서 과연 우리 외교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하는 문제다.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턴가 중국 중시론이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17대 총선 여당 당선자의 55%가 대외정책의 최우선국으로 중국을 꼽고 45%만이 미국을 선택한 설문결과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안보정책 구상'에서 중국을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로 묘사하면서 동북아 경제중심이나 안보현안과 맞물린 사활적 외교상대국으로 강조하고 있다.
중국 중시경향은 대중국 교역확대의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대미 수출비중이 1990년 29.8%에서 최근 17.6%로 떨어진 반면 대중국 수출비중은 1%내외에서 17.7%로 크게 확대된 사실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여중생 사망사건과 주한미군 감축, 이라크 추가파병 요청 등 한미동맹 관계에서 긴장이 높아지면서 중국은 미국의 대안으로서 거론되기까지 한다. 중국중시론은 젊은 정치인과 학자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관료사회에서 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중국의 역할도 친중성향의 주요한 동력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기조로 내세운 동북아중심국 사상 자체가 변형된 형태의 중국중시론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실정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 대신 중국을 택한다"는 발상은 외교적 자살행위라고 단언한다. 김일영 성균관대 정치학과 교수는 "자주적 역량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한미동맹을 버리면 중국으로부터 과연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도리어 반문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동맹국이기 때문에 한국을 중시하고 있고, 미국은 대중국 견제의 전초기지이기 때문에 한반도를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역의 경우도 대중국 투자로 생산된 상품이 미국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식으로, 대중교역 증가와 대미교역 감소는 역동적 의미가 있는 데도 이를 간과하고 있다.
특히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중국의 압도적 영향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중국의 패권주의적 속성에 대해 경계심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전문가들 조차 충분한 자체역량 확보 없는 대외정책의 변화를 반대하고 있다.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맺은 상태에서 중국과 인접한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는 가장 큰 외교적 자산이다. 이 자산을 지킬 것이냐, 또는 포기할 것이냐는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 본보, 국민의식 여론조사
우리 국민들은 정치안보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외교상대국으로 여전히 미국을 꼽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경제·통상적 관점에서는 중국에 비중을 둬야 한다는 비율이 미국 중시 입장을 도리어 넘어섰다. 안보와 경제를 분리하는 2중적인 외교관이 드러난 것이다.
한국일보가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창간 50주년 기념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치·안보적 관점에서 가장 비중을 두어야 할 나라로 미국을 꼽은 응답자가 64.5%에 이르렀다. 중국은 20.9%, 일본은 4.6%, EU는 2.1%였다. 그러나 경제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에 가장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답이 45.1%로, 미국의 41.5%를 앞섰다. 정치 경제 가릴 것 없이 미국을 최우선적으로 중시하던 행태가 변화한 것이다.
한미동맹 일변도에서 벗어나 국익을 위한 '외교다변화 전략'을 꾀해야 한다는 국민의 지적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안보와 경제에서 각각 따로 실리만을 취한다는 국민의 요망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냐는 데 문제점이 있다.
이 같은 경향은 최근 집권여당 국회의원 당선자 대상 조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열린우리당이 소속 국회의원 당선자 130명을 대상으로 지난 4월 조사한 결과 "앞으로 대외정책에서 미국보다 중국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63%를 차지해 충격을 던졌다.
실리우선의 외교관은 한미동맹에 대한 평가도 끌어내렸다.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현재의 한미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는 답은 23.9%에 그친 반면 '미국 위주의 외교관계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주문은 40.5%의 지지를 얻었다. 현 수준 유지 입장은 32.2%였다. 경제분야 중국 중시 입장과 마찬가지로 이 질문에서도 30대와 20대는 각각 55.1%, 51.4%가 대미중시외교 탈피를, 16.6% 13.1%가 한미동맹 공고화를 지지, 상대적인 진보성을 보였다. 특히 30대의 탈미(脫美)의식은 두드러졌다. 정치안보분야에서 30대는 미국 중시 입장(58.7%)과 중국 중시 입장(28.5%)의 차이가 30% 포인트로 다른 세대와 비교할 때 가장 작았다. 이에 비해 50대에서는 미국 72.4% 중국 13.4%, 20대에서도 미국 64.4% 중국 22.3%였다. 경제통상분야의 경우 30대의 중국 중시 입장(56.5%)은 미국 중시 입장(32.8%)에 비해 월등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전문가 제언/中대안론은 시기상조 反美감정 발산 자제를
최근의 한미관계 전개를 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 불안을 느낀다. 현재 한미관계가 겪는 어려움 탓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성급하게 제기되는 중국 대안론 때문이다. 한국이 처한 안보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밀한 한미 안보협력을 필요로 하는 시기에 왜 중국 대안론이 나오는가. 중국 대안론은 최근 우리가 겪은 중국발 경제쇼크와 갑자기 비중이 커진 중국에 대한 우리 외교의 정체성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한미관계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실망이 중국 대안론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한미관계는 주한미군 12,500명 감축 공론화를 계기로 조정국면을 거치면서 어려운 시기를 앞두고 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지 흔들리는 한미동맹 관계를 굳건히 하는 것은 우리의 안보 및 경제에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크게 보면 한미관계의 본체는 아직 건실하고 건강한 동맹관계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양국은 지금 군사 안보 측면에서 조정의 국면을 겪고 있을 뿐, 양국 관계는 상호방위조약으로 얽힌 군사동맹 이상의 포괄적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국면에 등장한 중국 대안론은 아직은 시기상조이고 그릇된 여론을 조장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실상 외교는 미국이냐 중국이냐 이분법적으로 갈라 말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것이다. 때문에 마치 미국의 대안으로 중국을 내놓는 듯한 언급은 자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미동맹이 없는 한국을 중국은 과연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한국이 중국에 대해 이 정도의 위상을 지니는 것은 미국의 동맹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한미동맹 없는 중국 편승론은 환상이다.
물론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으로 떠오르면서 중요한 경제교류 대상으로 등장하였다. 또한 중국이 앞으로 급격히 성장하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때문에 중국을 잘 관리할 필요가 있고, 앞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중국의 기여는 매우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한미동맹 조정도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고려하면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제반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안보측면에서는 미국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며 이러한 사정은 앞으로 상당 기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안보기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 측에서도 대가가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무책임한 반미감정 발산을 자제해야 한다. 정부도 한미동맹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재 진행 중인 용산기지 이전과 미2사단 재배치 등 현안을 둘러싼 협상에 있어서 지루한 밀고 당기기는 그만 하고 50년 동맹에 걸 맞는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 반미감정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와 정책당국의 태도가 중요하다. 정부 내에서부터 반미적 가치와 태도를 조장하는 듯한 언급을 자제하고 바람직한 한미동맹의 발전방향을 선도해야 할 것이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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