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6월23일 프랑스 극작가 장 아누이가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1987년 스위스 로잔에서 몰(沒). 아누이는 오이디푸스왕과 관련된 그리스 전설을 실마리 삼아 그의 사후 상황을 비장감 넘치게 그린 '앙티곤'(1944)으로 한국 연극 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작가다. 50여 편에 이르는 그의 희곡은 그 색조가 다채로워, 작가 자신이 이 작품들을 '검은 희곡', '분홍 희곡', '화려 희곡', '삐걱거리는 희곡', '가장(假裝) 희곡' '은밀한 희곡' '익살 희곡' 따위로 분류해 출판하기도 했다. '앙티곤'은 '검은 희곡'에 속하고, 역시 한국에서 여러 차례 공연된 바 있는 '도둑들의 무도회'(1938)는 '분홍 희곡'에 속한다.그러나 이런 다채로움을 관통하는 아누이 연극의 요체는 근원적 비관주의였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그의 부고 기사에서 아누이의 작품 세계를 '반짝이는 절망'으로 요약한 바 있다. 그는 그 절망의 칼로 가족, 순수, 사랑, 우애 같은 가치들을 후벼 팠다. 그런 절망적 세계관 때문에 아누이의 작품들은 비평가들로부터 자주 혹독한 비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전에나 지금이나 많은 관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아누이의 가장 열광적인 관객들은 세상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결코 누릴 수 없는 우익 허무주의자들일 것이다.
재단사 아버지와 바이얼리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누이는 법학을 공부하다가 때려치우고 잠시 광고계에서 일하다가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독일 점령기를 협력도 저항도 아닌 어중간한 정치적 입장으로 보낸 아누이는 소설가 로베르 브라지야크가 해방 뒤 부역자 숙청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자 그의 구명을 위해 동분서주했고,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 숙청의 주체들에 대한 원한을 키우며 자신의 해묵은 '우익 무정부주의' 속으로 더욱 깊게 침잠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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