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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알 카에다 砲門 "사우디에 정조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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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알 카에다 砲門 "사우디에 정조준하라"

입력
2004.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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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이후 미국 주도로 전세계에서 전개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장은 어디일까. 우선 미국이 일으킨 두 개의 전쟁,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대 테러전의 타깃이 '알 카에다'라고 생각한다면 답은 달라진다. 알 카에다가 전쟁을 벌이려 하는 가장 큰 전장은 사우디아라비아다.

알 카에다의 목표

최근 사우디 내에서 알 카에다 소행으로 의심되는 테러가 잇따르면서 사우디는 '새로운' 표적이 됐다. 그러나 많은 미 행정부 관리들이나 언론,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사우디를 알 카에다의 주요 공격목표로 주목했다. "알 카에다가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무너뜨린 것은 미국과 미국이 상징하는 자유를 증오하기 때문"이라는 감정적 설명을 해서는 이런 판단이 나오지 않는다.

알 카에다의 미국 공격은 미국을 전복시켜 그곳에 이슬람 천년왕국을 세우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알 카에다는 미국을 그런 류의 공격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순진하거나 어리석지 않다.

지난해 말 미국의 시사주간 뉴스위크 인터넷판(11월 11일)은 '진정한 목표'라는 제목의 분석기사에서 사우디 왕정 전복을 노리는 알 카에다의 전략에 대해 설명했다. 한 사우디 고위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알 카에다와의 전쟁에 있어 최전방은 사우디다.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을 파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우디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를 파괴할 수 있다면 사우디 정부는 약해지고 자연히 집어먹기 쉬워진다." 앞서 2002년 말 시사주간 타임은 CIA의 정보를 인용, 알 카에다가 구체적인 사우디 공격계획을 수립했다고 보도하는 등 사우디에 대한 경고는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왜 사우디인가

사우디는 이슬람의 성지 메카와 메디나가 있으며 계율이 엄한 와하비즘을 신봉하는 나라다.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이 꿈속에서마저 동경하는 성지 메카는 예언자 마호메트가 태어난 곳이다. 여기에 세계 최대의 원유 매장량이라는 선물까지 안고 있는 나라다. 알 카에다가 보기에, 신이 내린 선물을 무차별적으로 빼가고 있는 곳은 침략자 미국이고 이런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 아래 왕정을 유지하는 대표적 친미국 사우디는 배신자일 따름이다. 빈 라덴은 알 카에다가 그토록 신봉하는 와하비즘을 사우디 왕정이 타락시켰다고 판단하고 있다.

최근 들어 석유 시설에 대한 잇따른 테러가 현재의 고유가 상황과 맞물려 해석되면서 알 카에다가 미국 경제를 타격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채택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이 사우디 석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사우디 내 테러가 미국에 부담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석유 시설에 대한 테러가 미국 경제를 회생불가능할 정도로 무너뜨리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최근의 공격 역시 사우디 왕정 축출이라는 알 카에다의 목표와 연관시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외국인 및 외국시설에 대한 테러를 막지 못하고 석유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경우 사우디 왕정은 점차 미국 등 서방과 갈등을 빚고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 사우디와 서방을 연결하는 것이 석유이기 때문이다. 즉 알 카에다가 '석유'를 새 전술로 채택했다면 사우디 왕정을 무력화할 가장 약한 고리가 석유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수 있다. 사우디 경제를 떠받치는 외세를 몰아내는 것은 왕정 전복에 필수적인 민심 이반을 끌어내는 데도 효과적이다.

사우디와 알 카에다의 전쟁

사우디 정부는 지난해 5월 수도 리야드의 외국인 주거단지가 연쇄 자폭테러를 당한 이후 자국 내 알 카에다 조직에 대한 적극적 대응에 나섰다. 이후 많은 고위 조직원을 포함해 다수를 사살하고 수백명을 체포했지만 테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사우디 정보당국은 캐면 캘수록 알 카에다 조직의 뿌리가 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토로한다. 3∼4년이나 잠복해 있는 잠재 조직, 멀리는 구 소련 침공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지하드(성전) 조직이나 발칸 반도 및 체첸 등지의 이슬람 무장조직에까지 연계돼 있는 조직의 실체가 단기간의 발본색원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우디 체제 자체의 병폐도 알 카에다와의 길고 긴 싸움을 예견케 한다. 사우디 왕정은 1932년 건국 이후 헌법도 의회도 없이 가혹한 통제로 일관해왔다. 고질적인 부패와 경제정책 실패, 미국에 기댄 정책과 외교 노선 등은 체제에 저항하는 테러리스트를 끊임없이 길러내는 훌륭한 토양이다. 9·11을 실행에 옮긴 자폭 테러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인이었다는 점은 그래서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최근 사우디가 일부 사회 분야에서 개혁 조치들을 내놓고 미국 또한 확대중동구상을 통해 중동 지역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하려 하는 것도 이런 상황 인식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이는 하루아침에 달성될 수도 없고 미국의 무리한 입김이 오히려 사우디 내 반미감정을 고양시키는 역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런 탓에 한 사우디 관리는 "(알 카에다와의 전쟁에 대해)10∼15년을 바라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슬람의 성지를 품은 아라비아 반도를 놓고 벌이는 사우디 왕정과 알 카에다와의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와하비즘이란

와하비즘은 아랍권이 유럽 열강에 눌려 지내고 있었던 18세기, 이슬람 정신 회복을 통해 이슬람의 전성기를 되찾고자 했던 복고주의이다. 와하비즘은 1703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우야이나에서 태어난 무하마드 빈 압둘 와하브에 의해 시작됐다. 메디나에서 교육을 받은 와하브는 당시 이슬람권의 중심 이라크, 이란 등을 떠돌며 종교적 자양분을 흡수한다. 그는 이라크 바스라에서 4년간 종교 철학을 강의했고 1736년 이란에서는 교리 해석가들의 극단적 사상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그는 바스라에서 부유한 여자와 결혼한 후 부인이 죽자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기도 했다.

귀향한 와하브는 자신의 사상을 정리한 '합일의서'를 쓰고 새 종교운동을 펼쳤다. 그는 이슬람내 모든 개혁을 부인하고 초기 이슬람의 전통과 엄격함으로 회귀하자고 설파했다. 마호메트 시대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이슬람의 위대함을 되찾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 신자와 알라 사이에 존재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권위를 무시하고 묘소·성자숭배 등 다신주의적 관행을 배격했다. 청교도적 신앙생활을 강조한 그는 코란과 하디스(마호메트의 행장) 권위만을 인정했고 경전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교의 관철을 위한 무력 사용도 합당화했다.

한 분파에 불과했던 이 운동의 비약적 성장은 역설적으로 탄압에서 비롯됐다. 와하비즘이 알려지자 기존 교단은 1744년 그를 고향에서 추방했다. 와하브는 나지드 지방의 이븐 사우드 왕가의 수도 다리야로 가 왕가와 정치적 동맹을 맺는다. 이후 이들은 시아파 성도인 이라크 카르발라를 공격하고 사우디의 메카와 메디나를 점령, 전성기를 맞는다.

1818년 사우드 왕가가 오스만제국에 의해 붕괴하면서 와하비즘은 위기를 맞았으나 현 사우디 왕가인 이븐 사우드가 와하비즘을 기반으로 1932년 사우디 왕국을 건설, 지금까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렇듯 와하비즘과 사우디 왕가는 18세기 중엽부터 운명 공동체 였다. 오늘날에도 와하브 후손인 아쉬 사이흐 가문이 사우디 종교기관을 장악하고 있고 사우디 정부는 종교학교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알 카에다를 이끄는 오사마 빈 라덴은 이 와하비즘의 전사로 자처하고 그래서 미국은 사우디 종교학교를 알 카에다 양성기지로 단정한다. 결국 미국과 서방에 의한 이슬람 전통훼손을 거부하는 와하비즘이야말로 최근 사우디 내 외국인 테러의 진짜 배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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