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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나무와 칼싸움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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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나무와 칼싸움 소년

입력
2004.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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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우리 집 근처에는 야산이 있다. 교통은 좀 불편하지만 집 주변에 산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산에 갔다. 일요일에 완연한 여름 날씨라 산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들 행복한 모습이었다.그렇게 풍광과 산을 즐기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도 신이 났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나뭇가지를 꺾어 칼 싸움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이들은 한술 더 떠 갓 심은 묘목을 부러진 가지로 마구 쳐대고 있었다. 가만 있을 내가 아니다. "이 녀석들아, 나무도 아프단 말이야. 그만두지 못해!"

이내 아이들은 칼 싸움을 멈추었지만 내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완전히 수긍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이상한 아저씨야, 정말'하고 생각했겠지. 만약 근처에 부모가 있었다면 오랜만의 산행이 악몽으로 변했을 것이다. 자기 자식을 나무라는 사람을 어느 부모가 좋아하겠는가? 다행히도 근처에 아이들 부모는 없었다.

그 아이들은 나무에도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 나무에도 감정이 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분명히 감정이 있다. 풍부한 햇빛과 물, 그리고 수종이 같은 나무와 궁합이 맞는 벌레가 있듯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나무들은 곧고 바르게 잘 자라지만 음습하거나 소음이나 오염, 그리고 진동이 심한 곳에 있는 나무들은 시들시들하다 죽어 버린다.

"얘들아, 나무도 말은 안 하지만 그렇게 때리면 아프단다. 제발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다오. 네가 만약 누군가에게 맞으면 아프지 않겠니?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나무도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혈액형이 있단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형체는 다르지만 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너희들은 왜 모르니?"

어렸을 때 나 또한 칼 싸움 소년들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무심코 길가에 심어져 있는 나무 이파리를 뜯으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단지 그냥 심심해서였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그런 나를 보더니 불러 세웠다. "얘야, 나무 이파리를 그렇게 뜯으면 어떡하니? 그러면 나무 엄마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니?"

그 이후 나는 절대로 나뭇잎을 뜯지 않았음은 물론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무만이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고 독특한 방식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만이 이 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것도 아니고, 지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다른 존재를 착취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인간은 다시 열등한 인간을 착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아주머니의 한 마디에서 나는 이처럼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아주머니께 다시 감사를 드린다. 칼 싸움 소년도 내 이런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cjh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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