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미켈슨(미국)에게 '에덴(Eden) 홀(17번·파3·179야드)'은 낙원이 아니라 지옥이었다.21일(한국시각) 미국 뉴욕주 사우샘프턴 시네콕힐스골프장(파70·6,996야드)에서 열린 제104회 US오픈골프대회(총상금 625만 달러) 최종 라운드. 15, 16번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으며 선두로 나선 미켈슨의 눈에 US오픈 우승컵이 아른거렸다. 두 차례 준우승에만 그쳤던 터라 아쉬움이 많았다. 뒤를 돌아보니 구센이 15번홀에서 러프와 벙커를 들락거리고있었다. "반드시 우승하리라."
티샷이 왼쪽 벙커에 빠졌지만 미켈슨은 벙커에서 탈출, 홀 컵 1.5m에 바짝 붙였다. 하지만 에덴의 홀컵은 미켈슨의 볼을 외면했다. 퍼터로 살짝 굴린 볼은 홀 왼쪽으로 비켜 1.2m 가량 지나쳤고 두 번째 퍼트도 홀 오른쪽으로 빠졌다. 더블보기. 미켈슨은 머리카락을 쥐어 뜯었고 수천명의 갤러리들 사이에선 탄식과 한숨이 터져 나왔다.
16번 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미켈슨에 동타로 따라붙은 구센은 17번홀 티박스에서 미켈슨이 헤매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구센 역시 에덴 홀에서 티샷이 벙커에 들어갔지만 1m거리에 붙여 차분하게 파를 건져 사실상 승부를 마무리했다. 구센이 바람과 러프로 악명 높은 시네콕힐스의 최후 승자가 된 것이다.
2001년 이 대회에서 연장 끝에 우승했던 구센은 이날 버디 3개, 보기 4개로 1오버파 71타를 쳐 합계 4언더파 276타로 홈 팬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미켈슨(278타)을 2타차로 따돌리고 3년 만에 우승컵을 탈환했다. 미켈슨은 US오픈 준우승만 3번째. 구센은 이로써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통산 4번째 정상을 차지했고 우승 상금 112만5,000달러를 보태 상금랭킹이 6위(232만7,292달러)로 껑충 뛰었다. 구센은 "코스는 어려웠지만 운이 따랐다"는 겸손의 말로 우승 소감을 대신했다.
한편 이날 언더파 스코어는 단 1명도 없었고 출전선수 66명의 평균 스코어는 78.7타로 72년 페블비치에서 열렸던 대회 이후 가장 높았다. 공동2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어니 엘스(남아공)는 10오버파 80타로 합계 7오버파 287타로 공동9위로 무너졌다. 타이거 우즈(미국)는 6타를 더 잃어 합계 10오버파 290타로 공동17위에 그쳤다. 최경주(34·슈페리어·테일러메이드)는 5오버파로 합계 15오버파 295타로 공동 31위. 제프 매거트(미국)가 합계 1오버파 281타로 3위, 마루야마 시게키(일본)는 합계 4오버파 284타로 마이크 위어(캐나다)와 함께 공동4위를 차지했다.
/조재우기자 josus62@hk.co.kr
■레티프 구센은 누구
"어… 어니 엘슨가?"
레티프 구센은 국적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지만 스윙 스타일도 엘스와 매우 유사해 멀리서 보면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2001년 US오픈골프 챔피언에 오르기 전까지 구센은 주목 받지 못하는 골퍼였다. 그러나 무려 연장 18홀 혈투 끝에 이 대회 우승컵을 거머쥐며 스타반열에 올라섰다.
1969년 남아공 피터스버그에서 태어난 구센은 11세 때 부동산 중개업을 하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골프채를 잡은 뒤 엘스와 함께 남아공의 간판 선수로 떠올랐다. 90년 프로가 된 구센은 남아공 투어에서 6차례 우승한 뒤 96년 노섬벌랜드챌린지에서 유럽 투어 첫 정상에 오르며 상승세를 탔다. /조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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